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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드래곤 Mar 11. 2020

첫 강의

스웨덴에서 선생님이 되다.

스웨덴에서 박사생은 연구만 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20%의 teaching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 또한 80%의 연구활동과 20%의 teaching으로 이루어진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teaching 에는 랩 어시스턴트로 들어가거나 오늘 얘기할 Lesson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고, 실력이 된다면 정말 교수님처럼 Lecture도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 학기에서는 난 여러 가지 수업의 랩 어시스턴트, 즉 조교로써 들어갔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수강하는 수업 중 Becoming a Teacher in Higher Education라는 과목에서 학생들은 한번 Peer visit이라는 명명하에 참관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수 과제로 있었다. 그 때문에 나도 지도교수님께 이 사실을 전달하여 이번 학기에 강의를 진행할 수 있냐고 물어봤고, 한 과목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1. Lesson

내가 진행한 수업은 Lesson(lektion)이라고 해서 문제풀이를 도와주는 수업이다. 학교마다 교칙이 다르고, 학과마다 다르고, 학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학과 대부분의 수업은 Lecture(föreläsning), Lesson(lektion), Lab(laboration)으로 이루어진다. Lecture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강의로써 교수님이 수업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고, Lab 은 내가 이 브런치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실습수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리고 Lesson 은 내가 대학 다닐 때에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던 강의 스타일인데, 학생들의 성공적인 과목 패스를 위한 보조강의 느낌이다. 대부분의 수업이 그 전 Lecture에서 배웠던 이론을 토대로 한 문제풀이 강의이고, 추가로 Lab 이전에는 Lab을 진행하기 위해 알아 둬야 할 것이나 연습 수업을 진행하고, 시험 전에는 시험대비 족집게(?) 강의를 해준다.


이 수업은 다른 수업도 마찬가지지만, 출석이 필수가 아니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배우기보다는 문제풀이에 집중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자체 휴강을 하는 수업이기도 하다. 나도 석사과정 도중에 이 Lesson 은 자주 스킵했다. 어떤 수업은 처음에만 학생들이 몇 명 있다가 학기가 끝날 무렵엔 수업에 아무도 참석을 안 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강의를 맡으면서 걱정했던 것도 혹시... 학생들이 내 수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란 것이었다.

(다행히 내 수업 마지막 날까지 10명 내외로 항상 학생들이 있었다.)


2. 첫 강의

첫 강의 날이 다가왔을 때, 난 정말 어마어마하게 긴장을 하였다. 석사 졸업논문 발표 때보다 더 긴장이 된 것 같다. 이런 단상에 올라와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 최초이기도 하고, 다른 발표를 할 때에는 사실 내가 완벽할 필요는 없었는데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 입장에선 최소한 이 내용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학생들을 가르쳐 줄 수 있기에 긴장이 더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듣는 수업 중 Peer visit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여서 더더욱 긴장이 되고 떨렸다.

그래서 수업 전에 경험이 있는 다른 박사생과 얘기도 하고, 이 수업의 담당교수님과도 얘기해보고, 지도교수님 하고도 얘기를 해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조언을 구했다. 또, 첫 수업에 대한 강의노트를 작성하고, 심지어 집에서 연습도 했다. 인사는 어떻게 할지, 내 소개는 어떻게 할지, 이 수업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할지 모든 것이 신경이 쓰여서 잠들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수업은 이전에 포스팅에서도 몇 번 언급했던 Digitalteknik 강의로 논리회로에 대한 강의 었다. 다행히 내용 자체는 기본적인 내용이라 어려운 건 없었는데, 몇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내가 배운 방법은 한국에서 한국 교수님에게 한국 책으로 배웠는데, 여기서도 같은 방식으로 문제풀이를 해도 될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혹시 같은 과목일지라도 여기서 추가로 가르치는 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는 내용도 다시 보게 되고, 교수님 수업노트도 다시 보면서 최대한 같은 방식으로 풀이를 하려고 애쓰다 보니 시간 투자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많은 실수를 포함해서) 첫 강의를 무사히 마쳤고, Peer visit에 참석했던 분들에게서 강의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는데, 다들 참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처음 치고는 정말 잘했다고.... 다만 그 뒤에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해주는데, 내 자존감이 한 걸음씩 나에게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지적해주지 않는다. 정말 큰 문제가 있어도 돌려서 조언해주는 편이고, 그 외에는 그저 칭찬이나 격려를 해주는 게 많다. 그런 걸 알고 있다 보니 칭찬의 멘트는 잘 들려오지 않았고, 돌려서 해주는 지적들이 하나하나 가슴에 비수가 되어서 꽂혔다. 물론, 내가 발전해야 할 부분이고 도움되는 이야기여서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면서 들었다.


3. 첫 강의 이후


아무튼! 첫 강의가 끝났고! 내가 이거 잘 못한다고 짤리는 것도 아니고! 경험에서 배우는 거지! 란 마인드로 다음 강의들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세 번째 강의가 진행될수록 마음도 편해지고, 수업 준비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래도 역시 2시간 정도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나름 재밌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가끔 사무실에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뭔가 재밌고, 보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최소한 얘 내보단 많이 아는 구나라는 걸 확인함으로써 내 자존감을 채우기도.... ㅋㅋㅋ)


지금은 마지막 강의까지 마쳤는데, 솔직히 학생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스웨덴어를 못하는 외국사람이다 보니 더 어렵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영어도 썩... 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전혀 안 오는 상황도 있는 반면에 내 수업에는 그래도 꾸준히 학생들이 참석해주어서 최악은 아니었겠구나 하고 나 자신을 위로해본다.


요즘엔 또다시 학회에 제출할 논문 준비로 정신이 없다. 수업도 들으랴, 강의도 진행하랴, 랩도 들어가고 그 와중에 연구와 눈문 작성을 해야 하니 정말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야근(?)과 주말 출근은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서 경험한 회사생활은 이 것을 버티기 위한 튜토리얼이었을까 하하


그래도 나름의 취미생활을 키워가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졸업을 할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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