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온한 주말 아침이었다. 주말은 출퇴근 손님이 적기 때문에 지하철도 평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역무원 일은 특별할 것이 없다. 손님이 많으면 바쁘고, 적으면 여유로워진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어쩌면 너무 권태로워서 기억에 남지 않을 하루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감사합니다. OOO역 김필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경찰OOOOOO인데요. 지금 OOO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열차 여섯 번째 칸에 누군가가 시체를 옮긴다는 신고가 들어와서요. 한 번 내려가서 봐주세요."
"네? 시체요?"
"네. 사람 시체요. 경찰관들도 출동하고 있으니까 먼저 내려가서 봐주세요."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여유로운 주말 지하철이라지만 그래도 벌써 오전 7시 반인데. 서울 지하철에서 시체를 옮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이 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역사 내 질서유지와 승객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것의 나의 일이다.
그 시각 역무실에는 나와 사회복무요원 한 명뿐이었다. 역무실은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 혼자 무전기를 들고 승강장으로 뛰어내려 갔다. 넉넉하게 풀어두었던 허리끈을 타이트하게 조인다. 무전기로 운전관제에 사실을 알리고 여섯 번째 칸에서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용 무전기로 역사 내 방송과 교신을 할 수 있다
열차가 들어오는 팡파레 소리와 함께 나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열차가 정지한 후 스크린도어가 열리자마자 바로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지금 열차 내 민원처리로 인하여 잠시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손님들의 시선은 근무복을 입은 나에게로 쏠린다. 받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눈빛이다. 나도 이 옷만 벗으면 평범한 시민일 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니까.
보통 열차 내 민원을 해결하려고 들어가면 한참을 두리번거리거나 신고자를 먼저 찾는다. 많은 승객들 중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한 사람을 찾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만큼은 손님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볼 필요도 없었다. 열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악취가 단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커다란 검정색 이민가방이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지만 속으로는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그러나 어느덧 나는 노숙자로 보이는 50대 남자 앞에 서있었다.
"손님, 이 가방에 뭐가 들었나요?"
"..."
"손님, 가방에 뭐가 들었냐구요!!"
"폐식용유통."
됐다. 시체가 아닌 것이 확인된 이상 더 이상 열차를 지체시킬 수는 없다.
"손님, 일단 하차하시죠. 내려서 이야기합시다."
"내가 왜 내려."
'불결 또는 악취로 인하여 다른 여객에게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물건'을 소지한 자의 승차를 거절할 수 있다
그럴 줄 알았다. 역시나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민가방을 열차 밖으로 던져놓고 그의 겨드랑이에 양손을 끼워서 들고 내린다. 다시 열차에 승차하려는 그의 목덜미를 잡고 무전기로 열차 발차 지시를 한다. 스크린도어가 닫힌 뒤 그의 동의를 받아 물건을 확인했더니 정말로 폐식용유통이었다. 며칠간 내린 비를 맞아 냄새가 심하게 난 것이다. 지퍼를 열고 맡아본 냄새는 진짜였다. 가히 '시체를 운송한다'는 신고가 들어올만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를 참으며 여행운송약관 규정을 안내드리고 역 바깥으로 모셔다 드렸다. 물론 그 과정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는 지하철역을 떠났고 나는 다시 역무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잊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의 겨드랑이에 끼웠던 나의 두 손에는 그의 향기가 진하게 배여 은은하게 풍겨왔다. 심지어 퇴근하고서도 한참 동안 그랬다. 손을 비누로, 바디워시로 아무리 박박 씻어도 묘하게 남아있었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나쁜 기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