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도구

나에게 일 시키는 방법

by 쓰는사람 Sun

브런치에 글을 매일 쓰기 시작한 건 요 근래가 처음이다. 갑자기 부지런해졌거나 야망을 품게 된 것은 아니다. 시스템을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휴대폰으로 썼다. 브런치가 모바일 친화적이기도 한 것 같고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기에는 컴퓨터보다는 폰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로 글을 쓸 때와 자판을 칠 때의 마음가짐은 이상하리만치 다르다. 글 수정도 무척 어렵다. 더구나 얼마전 아이폰으로 기종을 바꾼 뒤부터는 폰자판을 치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천지인을 쓰다가 자판형식도 바꾸게 되었고 그 전에 쓰던 폰이 갤노트였기 때문에 폰자판 사이즈도 형편없이 작아졌다. 톡을 보낼 때도 자판 속도가 엄청 느려졌고 오타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4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ㅂ을 치려는데 ㅈ이 쳐지고 여튼 엉망진창이다. 이 지경이니 폰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새로 선물받은 키보드 때문에 방치되어 있던 옛날 키보드를 청소를 하다 발견했다. 그리고 이 키보드를 폰 전용으로 꺼내두었다. 노트북용 따로 폰 용 따로 키보드를 두게 되니 왔다갔다 귀찮게 연동을 안해도 되고 폰으로 긴 글을 쓸 때는 바로 블루투스로 연결을 해서 쓸 수 있었다. 책상 바로 뒤에 있는 책꽂이에 키보드를 두었다. 일하기 전에 키보드 위에 폰을 올려두고 선 채로 다다다다 글을 쓴 후 의자에 앉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방치된 키보드도 활용하고 글도 편하게 연달아 쓸 수 있게 되었다. 흐뭇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를 탓하지 말자. 내가 일하기 싫어지고 하지 않게 되는 환경을 면밀히 살피자. 나라는 도구가 최적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나를 꾸짖지 말고 도와주자. 어쨌든 나는 나를 써먹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 도구도 없는 심플하고 정갈한 환경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을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해나가는 나다. 어쨌든 오늘도 폰 전용 키보드로 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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