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런 사람이 좋더라.
난 놀릴 수 있는 사람들과 놀고 싶다. 문득 주변 인간관계가 다 시들시들하고 재미도 없고 아무도 안 만나고 싶게 쓸쓸할 때가 있다. 그동안 이럴 때가 되면 내가 친한 사람들을 못만났구나, 웃긴 사람들을 보고 싶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운동을 하고 몇 가지 단톡방에 오가는 말들을 보고 집에 오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웃긴 사람이 아니라 놀림을 받고 놀릴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한 거였구나. 내가 속한 단톡방들은 어쩔 수 없이 내 나이와 성별 직업 등과 비슷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정중하다. 그리고 위로를 잘 해주고 친절하다. 누군가 징징대면 햇살 같은 말들로 달래주고 격려한다. 서로의 장점을 드러내 주고 내가 별 거 아님을 어필하며 안심시킨다. 다 좋은 일이다. 이런 친절과 배려가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든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우정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나는 즐겁게 놀릴 수 있는 사람, 나를 실컷 놀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놀리는 게 조롱은 아니다. 어쩌면 놀리는 관계는 진정한 우정의 증표일 수도 있다. 놀리고 놀림받는 것에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상처받지 않을만큼 쌓인 서로의 시간, 그리고 조롱이 아닌 놀림정도까지만 갈 수 있는 센스. 유머감각, 별거 아닌 말에 놀라거나 기분 상하지 않는 자존감, 등등. 나는 지금까지 이런 것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 처음 만난 성격 좋아보이는 사람을 가볍게 놀리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놀리고 놀림받는 관계라고 내 멋대로 생각한 사람이 알고보니 심각하게 정색하는 꼰대여서 혼이 난 적도 있다. 특히 내 세대 여성들은 놀림받고 놀리는 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내가 속한 직업군의 사람들도 쓸데 없이 진지하다. 난 이럴 때 외롭다.
카더가든 유튜브를 보면 재밌다. 서로 마음껏 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픽하이 유튜브를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를 싫어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할머니들도 서로 매콤한 대화를 나누며 깔깔 웃는다. 아주 젊은 여성들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더 젊거나 더 늙었어야 했을까?
물론 나에게도 놀림받고 놀릴 수 있는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잖고 친절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놀리고 싶다. 놀림받고 싶다. 오고가는 놀림 속에 더 진한 우정을 느끼고 싶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하며 쓸쓸하게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