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계역, 월계역 같은 경기 북부의 지하철 역들 주변은 정취가 남다르다. 수락산, 불암산 같은 신령스러운 바위산을 배경으로 오래되 보이지만 말끔한 복도식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전철과 도로들이 얽히고 섥힌 모습은 어쩐지 영화에서 본듯한 느낌을 준다. 조용히 읊조리며 빨래를 널거나 간단한 식사를 마련해서 말없이 우물거리는 주인공 너머 배경 같은 것. 계절은 봄이 어울린다. 옆에 고양이라도 한마리 늘어져 자고 있으면 당장 단편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그런 풍경들이 나른하게 펼쳐지는 곳이 많다.
경춘선 숲길은 그런 아파트 틈 사이에서 시작된다. 녹천중학교 정문과 신한은행 부스 사이의 좁은 길을 잠깐 지나 계단을 오르면 도로와 아파트를 요리 조리 통과하며 부지런히 뻗어가는 철길이 있다. 유난히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많다. 경의선 숲길과는 다르게 산책하는 이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걷다보면 스피커를 놔두고 날마다 연마했을 법한 섹소폰을 멋들어지게 불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고 젊은이들보다 더 힘차게 걷고 있는 할머니들이 있다. 중년부부와 차려입은 젊은이들 유모차를 밀고 있는 피곤한 젊은 부부들도 보인다. 아파트 가의 길쭉한 나무길을 지나 조금만 더 가다 보면 공릉동이다. 주변의 풍경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제목이 그럴싸한 까페들과 초밥집과 사케집도 보인다. 빌라를 개조한 음식점들과 이제 기운차게 출발을 준비하며 열심히 공사중인 가게들도 보인다. 이쯤 와서 지도를 보면 공릉동의 맛집들도 여럿 눈에 띄고 공릉동 도깨비 시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요일이라 시장은 열지 않았다.
왜 시장은 일요일에 닫을까? 매출이 훨씬 늘어날텐데.
눈에 풍경이 보이는 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주워담는 무가치한 대화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는 선반을 보며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선반에 짐을 올려놓고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외국인이 놀란다더라 얘기를 하다가 그런데 관공서에서 예산을 받아 제출해야 하는 영수증이 너무 많다.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라는 말을 한다. 공릉동 닭한마리를 검색하다가 20년이 훌쩍 지난 옛날 자췻방 근처에 있던 닭한마리 식당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결국 점심은 닭한마리 본점에 가서 먹기로 했다. 코로나가 무색하게 밥집이 바글바글하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서 앉아 닭한마리를 시킨다. 먹기 좋게 토막친 닭이 육수에 풍덩 빠져있다. 탕이 끓기를 기다리며 소스를 제조한다. 다대기를 넣고 겨자를 한바퀴 돌리고 간장 소스를 넣은 후 적당히 야채를 부으면 완성. 잘 익은 닭의 살을 발라 소스에 버무린 야채와 먹는다. 구수하고 상큼하고 맛있다.
먹을 때는 묵묵하다. 말캉한 떡과 포실한 감자까지 남김없이 건져먹고 칼국수를 말아먹으면 식사의 끝이 보인다. 야무지게 먹고 벌떡 일어나 계산을 하려고 나와보니 밖에는 대기하는 인파가 늘어서 있다.
다시 가던 길을 돌아와 철길로 접어든다. 벽화와 조각상과 문구들이 주변에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더 많아져있다. 화장실도 갈겸 철길 옆 카페로 들어선다. 핸드드립을 하고 원두도 선택할 수 있는 카페다. 아이스아인슈페너는 맛있다. 드립커피는 진한 보리차마냥 밍밍하다. 그래도 나온 컵이 예뻐 기분이 좋아진다.
계속해서 걷는다. 화랑대역이 나온다. 오래된 기차가 전시되어있고 불빛 터널이 있다. 공원이 조성되어서 먹거리 파는 트럭도 있고 사람들도 나와서 많이 놀고 있다. 복잡한 공원을 지나 길을 건너면 본격적인 화랑대 육사 주변이다. 씩씩하게 구보를 하고 축구를 하는 육사 생도들이 보이고 궁궐문 같은 육사 정문이 보인다. 또 군인들 이야기를 한참 하고 담너머러 골프장이 보이면 알지도 못하는 골프 얘기도 잠깐 해보다 이내 재미없어 시들해진다. 길은 구리담텨에서 갑자기 뚝 끝난다. 길은 끝나지만 걷기는 계속된다. 도시 외곽의 쓸쓸하고 황량한 풍경속으로 걸음을 옮기면 비닐하우스 여러 동과 마스크를 쓴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쑥 마주친다. 도시의 틈새를 지나 걷다 보면 갈매역. 집에 가는 마을 버스를 타면 당연한 듯 꾸벅꾸벅 존다.
오늘도 걸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걸으며 무가치한 대화를 한다. 이런 시간이 또 일주일을 살게 한다. 6킬로에서 10킬로 1,2만보를 걷고 나서 집으로 오며 꾸벅꾸벅 졸 때 그 노곤함이 좋다.
기찻길 따라 걷는 초봄 정취 가득한 경춘선 숲길 맛있는 아인슈페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