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갔다. 봄에는 문경이지 하는 마음이었다. 근 10여년 전에 걸어봤던 문경새재 길의 편안함과 초록초록함이 강렬하게 남아있던 탓이다. 어딘지도 잘 모를 국도를 따라 문경 가는길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아직 채 지지 않은 벚꽃잎이 흩날리고 핑크뮬리같은 빛깔로 톤다운된 분홍 나뭇가지가 아른거렸다. 천을 따라 이어진 마을길에 벚꽃나무가 끝이 없었다.그리 좋지 않은 날씨의 저녁나절이었지만 한가롭고 아름다운 산촌의 국도 풍경은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하는 서편제의 한 대목을 절로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문경새재로 들어가는 초입은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로칼 푸드 음식점들이 어우러진 깔끔한 거리였다. 하지만 지방 명소에 가면 늘 보이는 생뚱맞은 조형물과 오락시설들은 여지 없이 있었다. 조금만 손을 봤으면 싶은 전동 열차, 끝없이 쨍쨍거리는 동요를 악을 쓰듯 틀어대며 매우 짧은 간격으로 운행을 하고 있었다. 한 10여분 들었을 뿐인데 진절머리가 났다. 건너편에 있는 생태미로 공원에 눈이 아프게 보이는 조형물들도 엄청나게 칼라풀했다. 야외 공연장과 옛길 박물관은 자금성을 보듯 터무니없이 웅장했다. 문경 오는 길에 봤던 충북 괴산에도 이후에 보게 된 진남휴게소도 터무니없는 규모의 자금성같은 건축물들이 있었다. 가장 압권은 어여쁘게 심어져있는 사과나무들 옆에 백설공주와 난장이들 인형이었다. 아아아아. 사과 하면 백설공주를 생각하는 게으른 감성, 그것도 우리 옛길이자 관문인 문경새재 제1 관문 앞에 백설공주랑 난장이가 웬말이냐.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는 어린이에겐 미안하지만 사과랑 연관된 문학작품이나 우리 동화라도 좀 찾아보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식의 동화마을 비슷한 컨셉은 언제쯤 싹 사라져 안볼 수 있을까. 근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인천 가서도 생뚱맞은 동화마을 때문에 눈을 버렸던 기억이 났다.
제 1관문에서 제 2관문으로 가는 새재길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초봄의 나뭇잎들은 연한 빛을 뿜어내며 살랑이고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석회질이 섞인건지 옥빛으로 빛난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와 연둣빛의 조화가 더할 나위 없다. 지루할만 하면 나오는 문화재도 흥미롭다. 경상감사 업무 인수인계 장소라는 교귀정은 우아하기 짝이없고 ( 이런 곳에서 인수인계를 하다니 ) 조선시대에 쓰여졌다는 산불됴심이라는 비석의 글자는 인터넷 서체로 개발했으면 싶게 귀엽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과거의 경부고속도로 같은 영남대로는 대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좁은 산길이지만 그 작명이 호쾌하다. 그 길을 따라 관문을 통과했을 옛 사람을 잠시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제 2관문까지는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었다. 가다 보면 두 곳에 휴게소가 있어서 술도 팔고 음식도 파는 데 어떻게 도립 공원안에서 두 곳만 영업을 하는지 궁금했다. 기왕 할거면 좀 더 깨끗하게 정식(?)으로 했으면 싶은데 수도권에서 흔히 보는 계곡 옆 음식점 같은 조악함이 아쉬웠다.이래 놓고 파전과 사이다를 야무지게 먹기는 했다.
문경새재 말고는 어디를 볼까 하다가 활공랜드는 너무 날이 안좋아 포기하고 고모산성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문경의 와일드한 작명에 다시한번 놀랐다. 조그만 빌라는 문경타워팰리스, 프로판 가스를 파는 가게의 이름이 문경 에너지 프라자였다. 그 중 가장 와일드한 곳은 바로 진남 휴게소. 이 곳은 정말 정체가 궁금한 곳이었다.외관부터 무슨 종교 시설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데 들어가보니 부잣집 응접실에나 있을 법한 테이블과 의자가 즐비하고 유리장에는 온갖 수석이 전시되었있었으며 샹들리에가 눈이 부셨다.직원들은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있고 음식들은 싼데 맛있었다. 북경 여행이나 북한에 방문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었다.어쩐지 약간 무섭기도 했다. 이래놓고 김치찌개를 또 맛있게 먹었다.수저통도 살균이 되고 식혜도 마음껏 퍼다 먹게 무료료 비치되어있었다.신기하고 궁금한 곳이다.
고모산성에 올랐다. 아무 기대도 없이 산책하듯 올랐다가 놀라운 비경을 만났다. 고모 산성의 풍광은 몇년전에 갔던 블라디보스톡 근방의 우수리스크를 연상케했다. 장쾌한 발해의 풍모가 느껴졌다. 연천의 호로고로 성과도 상당히 비슷했다. 바로 앞을 흘러가는 강과 화산지형이 분명한 검은 바위들의 느낌이 그러했다.물론 고모산성은 발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중국이나 연변을 가고 싶은데 가까운 곳에서 그 느낌을 받고 싶다면 문경의 진남휴게소와 고모산성을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문경이라는 지명이 주는 부드러움과는 달리 문경은 와일드하고 호쾌한 곳이었다. 가을에 다시 갈 것이다.활공랜드도 가보고 문경새재길도 제 3관문까지 가 볼 것이다. 가다가 뱀이 나와서 다시 돌아온 토끼비리길도 다시 걸어볼 것이다. 토끼 비리는 그 뜻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토끼랑은 관련 있지만 비리와는 관련이 없다.궁금하면 찾아보시길.
문경은 흥미롭고 멋지다.
문경새재길.
멋있는 고모산성
화려함의 극치, 수저통도 살균되는 진남휴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