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예찬 1
귀여운 시행착오가 그려진다/ 자석 비누 홀더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나는 사람들이 했던 무심한 이야기들이 콕 박혀서 오래오래 남아있을 때가 있다.
" 난 불편한 걸 그냥 참고 쓰는 사람들이 너무 이상해. 난 꼭 뭘 만들거나 고쳐서 편리하게 만들어놓거든."
이 말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직장 선배가 했던 말이었는데 이상하게 이 말이 남아서 나를 지배할 때가 있다. 전선이 엉켜서 자꾸 걸리거나 뭔가가 걸려있으면 싶은데 걸 데가 없어서 바닥에 걸리적거리거나 물건의 위치가 안 좋아서 동선에 문제가 생길 때 이 말을 자동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난 그걸 고친다! 고치거나 정리해서 훨씬 편리해져버리고 만 나 자신을 발견하면 너무나 떳떳하고 자랑스럽다. 기존의 도구를 구입해서 고쳐도 으쓱하긴 하지만 사실 더 기분이 좋을 때는 집에 있는 뭔가 쓸모없는 것들을 편리한 삶을 위한 도구로 탈바꿈 시켰을 때다. 이런 분야의 달인은 사실 어르신들이다. 농사 짓는 시골집에 가보면 집안의 각종 잡동사니를 솜씨좋게 정리하고 쓰기 좋게 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덧붙여서 만든 여러 도구가 보인다. 그 중에 하나가 시중에 제품으로도 나와있는 밭맬 때 쓰는 이동식 의자일 것이다. 할머니들이 쓰는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를 밭 맬 때마다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끈이나 고무줄로 잡아매다가 누군가 그걸 보고 제품화 한 것... 이런 과정을 그려보면 늘 경이롭고 약간의 존경심을 갖게 된다.
자석 비누 홀더도 나에겐 그런 존재다. 우리집엔 자석 비누홀더가 다섯개나 있다.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친환경으로 가기 위해 샴푸와 바디워시를 모두 비누형태로 바꾼 후 물러지는 비누 문제로 골치를 앓던 중 이 멋진 도구를 발견하였다.
비누가 물러진다 - 비누가 바닥에 닿는 면을 최소화한다. (병뚜껑 등을 붙여서 공중에 띄우기) - 비누에 막대기를 찔러 넣어 벽에 고정시킨다. (휴게소나 공중화장실 알뜨랑 비누) - 새 비누로 교체하기가 힘들다. - 비누의 무른 성질을 이용하여 병뚜껑 재질을 넣고 그것을 자석에 붙인다. - 자석이 부착된 고정대를 벽에다 쉽게 붙이게 접착식으로 한다. - 기왕 붙이는 고정대는 예쁘게 나무재질로 해서 만든다.
이 엄청나고 귀여운 과정을 통해서 탄생하게 된 원목 자석 비누 홀더는 씽크대, 욕실, 세면대 위에 철컥철컥 붙어 있다. 비누를 떼어내어 머리를 감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하고 거품이 채 가시지도 않은 비누를 다시 철컥 붙일 때마다 쾌감이 느껴진다. 뭔가가 탁 제대로 맞물리는 기분이다. 전보다 세배는 비누가 오래간다. 바닥에 붙어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말라서 도도하게 딱딱하다. 샴푸바 사서 하루 한두번씩 머리 감는데도 엄청나게 오래간다.
멋진, 멋진 자석 비누홀더.
내가 직접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다. 나무조각을 하나 마련한 후 쓰리엠 테이프를 붙이고 거기다 자석을 단단히 고정한 후 비누에 병뚜껑을 꽂아서 철썩 붙여서 충분히 만들었을 것 같은데.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왜 질척거리는 비누만 미워했지. 어리석은 나 자신을 꾸짖어본다.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멋지고 귀엽고 무해한 도구들을 생각한다.
<물때 낀 씽크대에서도 도도한 비누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