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다. 격하게 아무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무기력도 아니요. 귀차니즘도 아니요. 그저 오늘은 그런 날인 것이다.
생각을 하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 생각에 대한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목적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체의 획일화된 사고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하기가 싫다. 아니 강한 부정을 통해 오히려 간절히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인 것이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추구했는데 보다 좋은 일을 하라고 질병을 받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부를 추구했는데 현명해지려고 빈곤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위해 성공을 추구했는데 자만하지 말라고 실패를 받았다."
-뉴욕 대학교 재활연구소 로비의 걸려 있는 시 <무명 병사의 말>
이런 아이러니 삶을 살아야 하다니! 솔직히 내가 어떤 목적을 위해 계획한다고 해서 원하는 데로 이루어지지 않고,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관점이 달라짐을 체감할 때가 있긴 하다.
무명 병사의 말이 사려 깊은 현자(賢者)와 같아, 멍한 상태에 있지 말라는 마음의 재촉이 급한 달음질로 나의 불안이 느껴진다.
나의 생각이 지식과 혼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오늘이다.
날씨 탓으로 돌린다. 날씨는 우리의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뒤숭숭한 것은 분명 스산한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기 때문이라고 여겨본다.
이렇다 저렇다 생각에 어쨌든 내가 무엇을 한들 결과는 내 손에 달린 게 아닌 것 아닌가?
결론적으로 책임을 모두 내가 짊어지고 싶지 않다 말이다. 더욱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것조차도 모른다. 어? 근데 생각을 하고 있네.
알고 보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멍 타임' 생각을 비우는 행위 자체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을 알려는 탐색이 필요했나 보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방향을 결정하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조바심이 섣부른 행동으로 될까 봐 멈칫한다.
내게 어떤 결과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이 또 불안을 야기했다. 불안을 느낀다. 꼭 미래가 불안해서 불안이 아닌 겨울바람에 앙상하게 나뭇가지로 남아야 하는 순리처럼 나의 내면이 불안으로 무연하다.
이 허탈함을 채우기 위한 식욕이 생기다가, 생각이라는 가닥을 잡으면 허기짐이 생긴다.
나는 생각을 한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먼저 해야 하는 우선순위를 하다가 갖고 싶은 소유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간다. 물건에 필요성을 강조하는 합리성을 이루기도 전에 벌써 마케팅 홍보 글에 눈에 사로잡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순식간에 핸드폰 결제창까지 손놀림이 후다닥 재빠르게 도 다른다.
지금 나를 만족하기에는 무언가 해야겠다.
이런 욕구 충족을 하기 위해 오늘도 지출은 늘어나는구나.
정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허기짐을 달래기 위함 먹을 것인가? 내 허물을 감싸 줄 입을 것인가?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대 작용이 필요했던 것인가?
내가 해야 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야기될 모든 사태에 대해 '불안'이었구나 '느끼기'에 멈췄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건 두려움이다.
나에게 얻어지는 결과를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고 나에게 말을 건넨다.
시련이 되지 않도록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결국 나는 목적 있는 방향으로 생각을 이끌어 본다.
자기를 달음질해야 멈추지 않고 비로소 앞으로 나갈 수 있으니, 다시 생각을 가다듬으니 마음에 힘을 얻는 그런 용기를 갖게 된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 되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삶이 되는 오늘의 일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