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쌀쌀한 11월 어느 날 낙엽 잎사귀 덩굴도 혼자가 싫었나 보다.
청명한 날씨가 지속되는 요즈음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왔다. 창가 넘어 비친 산 등선이 알록달록하다. 푸른 하늘 아래 노랗게, 빨갛게, 진한 주홍빛 나뭇잎 형형색색 조화롭다.
집에 돌아오는 길 바람 따라 가랑잎 되어 날리는 잎사귀 덩굴을 기어코 지나치지 않고,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는다. 짓궂은 개구쟁이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나이는 먹었는지, 짧지만 강렬히 자신들의 색깔을 비추고 열렬히 불태우는 식물들에게 하나, 둘 관심 갖게 된다.
바쁜 생활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가 지내온 시간을 되새겨 보고 싶은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유가 어울리는 계절이지만, 나는 분주 한 날이 더 많긴 하다.
오늘도 아침에 헐레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빵을 꺼낸 뒤 눈이 다 뜨지도 않은 상태에서 과일을 깎는 신공을 보인다. 남편 끼니를 대충이라도 거르지 않게 꼬박꼬박 챙겨준다.
나는 놀랍게도 다시 기절해 잠드는 특기도 있지만, 내 업무가 쌓인 날은 집에서 동료가 출근하는 9시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결과 보고서를 촉박하게 제출하는 일을 번번이 한다.
그럼 두 번째 알람이 울리면 기쁨 이를 깨워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의 성장판에 도움되는 스트레칭으로 정성스럽게 팔이며, 다리까지 주무른다. 내 품에 폭 안기는 기쁨 이를 안는 나의 소소한 일로 비로소 정신이 깨워진다.
"우리 못난이 똥 강아지 일어나!"
부드러운 어조로 딸을 깨워도 잠결에 실눈으로 보인 엄마가, 먼저 준비했다 싶으면 꼭 짜증을 내며 안 일어나려고 한다. 출근길에 내 마음 바빠 재촉하면 아이는 칭얼거림도 잠시,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챙겨한다. 아침에 학교를 보내면서 가방을 메고 가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 해방감을 느끼는 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품 안에 안길 때나 자식'이란 뜻으로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어려서는 잘 따라도, 크면 부모 뜻을 따르지 않으니까 아이가 어릴 때일수록 부모가 함께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아이는 유년시절 주 양육자와 애착이 잘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이 많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타인과의 교류, 결국 사회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 양육자가 '엄마'인 '내가', 해야 할 몫을 기어코 책임지고 선택하였다.
때때로 망설임에 엄마 역할을 아니, 더 크게는 아내 역할을 사직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정의에 내 아이, 핏줄, 하늘이 맺어준 천륜(天倫) 도리 된 삶이 중요하게 받아졌다.
이 땅에서는 홀로서기를 할 줄 알도록 아이에게 독립심을 키워야 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기에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상생(相生)을 가르쳐야 하는 것도 부모로서 이치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놓쳤던 소중한 가치들을 배워 나가는 것, 역으로 아이를 통해 부모가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 아닌지 같이 고민하고 싶다. 정서는 본질을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본질이라 하면 천성적으로 갖고 태어난 '고유' 나만의‘특유함’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서를 통해 ‘성품’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