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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에서 일어난다

깨달음의 조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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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조깅하기 좋은 산책로가 있다.

햇빛을 받아 적당히 반짝거리는 긴 천을 끼고 달리고 있노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지루하지 않게 오르막 내리막도 섞여 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적절해서 아주 만족하며 조깅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조깅을 하러 나섰는데, 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앞으로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쌩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모자에 선글라스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팔을 드러내는 민소매까지. 운동깨나 하신 분의 전형적인 실루엣이었다. '아저씨 운동 열심히 하셨네' 하고 그분 뒤를 따라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스가 그리 빠르지는 않아보였고, 적당히 뛰다가 앞지를 심산이었다.


그런데 웬걸? 약 50분간 뛰는 동안 나는 그 아저씨를 한 번도 따라잡지 못했다.

그분은 시종일관 같은 속도로 달렸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리고 내가 지쳐 걷기로 결심했을 때에도 그분은 이미 멀찍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실 스스로에게는 퍽 충격이었다. 나는 그래도 30대이고 이 분은 못해도 50대로 보였는데!

내가 왕년에 군대에서 특급전사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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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과거 모습에 기댄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 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1-2주에 한 번 조깅할 때, 그분은 규칙적으로 그리고 더 자주 뛰었을 것이다.

내가 '이쯤하면 됐다'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뛰어갈 때, 그분은 훨씬 더 멀리 목표를 두고 달렸을 것이다.

군살 없고 다부진 체형을 보니, 식단 등 몸 관리도 철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 나는 어제도 자기전에 맥주를 먹었었지..


나는 체력 하나만큼은 늘 자신있었다. 특별히 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군살이 붙지 않았고, 부족한 체력 때문에 허덕인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상태가 영원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불균형한 식습관과 육아로 인해 흐트러진 생활리듬,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나이듦의 영향으로 내 기본체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리라. 이러한 메타인지와 겸손함은 결국 기본기와 꾸준함의 중요성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게 된다. 부족하니 기본부터, 작더라고 꾸준하게 정진하자.


내가 구독하는 뉴스레터 썸원에서 마침 이러한 제목의 뉴스레터가 왔다.

"성장은 계단식으로 일어납니다. 아니, 계단을 오를 때 일어납니다"


실제로 계단오르기가 신체와 두뇌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요약한 내용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본문 내용보다 서두에 등장한 이 문장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눈앞에 경사나 고층이 있다면,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클지도 모른다. (중략)."


성장이라는 것을 무언가 낮은 레벨에서 높은 레벨로 이동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게 일견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일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성장은 계단을 한발한발 딛으면서, 허벅지 근육에 힘을 주면서, 땀도 뻘뻘 흘려가면서, 숨이 가쁘지만 묘한 상쾌함도 중간중간 느끼면서 일어난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성장의 진면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 경험은 기초체력, 잔근육과 같은 나의 기본기를 한 층 더 높은 레벨로 올려놓는다.

그러면 다음 성장도 이전보다는 더 나아진 조건으로, 두려움 없이 나아갈 용기가 커진다.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기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꾸준하게 기본기를 점검하고 메우자.

그러면 성장의 기회가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나부터 스스로 기본을 점검하고 꾸준함을 쌓아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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