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희 Nov 16. 2023

자유로운 박작가의 어느 푸른 날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한없이 투명하게 맑은 날

늘어지게 푹 자고 일어나 보니 오전 10시. 꿈도 꾸지 않고 오랫만에 늦잠을 잤다. 바스락바스락 보송보송한 이불의 느낌이 좋아 늑장을 부리고 누워 창밖의 바다를 바라 봤다.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투명하고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살랑 들어오며 온몸을 스친다. 밖은 이미 대낮처럼 밝아 방까지 다 환할 정도로 눈이 부시다.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파도 소리. 잠시 눈을 감으니 소리는 더 선명해진다. 오늘이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이구나.


두 번째 여행 에세이 <엄마의 슬기로운 여행>을 출간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온 여행이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던 6년 전, 10년 후에는 하와이 한 달 살기를 하자고 남편과 약속 했었다. 목표 했던 것 보다 몇 년 당겨서 6년 만이다. 이게 다 5년 전 이맘때 시작했던 '슬초브런치프로젝트' 덕분이다. 그때부터 새벽기상, 책읽기, 글쓰기, 운동...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갔던 것 들이 하나 둘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여러 면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이번 여행에서도 읽고 쓰는 일상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이어 나갔다. 있는 곳이 달라졌을 뿐 생활 패턴은 다르지 않다. 이 곳 에서의 이야기로 세 번째 여행 에세이를 기획하고 다. 이번 책은 포토 에세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퀄리티 좋은 사진을 위해 '라이카q3'도 챙겨왔다. 돌아가면 찍어 놓은 사진과 글을 다듬고 다듬느라 한참을 씨름하겠지만 한편으로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즐긴다고나 할까. 작업을 하는 동안 여행할 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고, 추억할 수 있고, 남겨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근한 매력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면 해야할 일들이 떠오르던 것도 잠시.




"안녕하세요. 대표님. 라라앤글 강편집장입니다. <부동산 플러스>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온라인 예약판매 스타트가 좋습니다. 내일이면 인쇄가 마무리 되고, 바로 서점으로 배포 시작하면 다음주 부터는 독자들 반응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남편은 십여 년간 부동산 개발 및 투자 관련 일을 해왔고, 이제는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런 그에게 부동산 투자 관련 서적 출판을 제안했고, 남편은 조금 걱정을 하면서도 와이프 믿고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의 첫 책이 다음주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내 책이 나올때 와는 또 다른 묘한 기분이다. 


"축하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남편에게 듣던 소리를 이번에는 내가 남편에게 해주었다. '이정도 쯤이야'하는 표정으로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웃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장난끼는 줄지 않았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스노클 어딨어?"

"발코니에 있잖아. 내 것도 같이 챙겨줘."

아이들이 부산스럽다. 오늘이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며, 아까부터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가야 한단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준비한다. '등교 준비를 그렇게 하지.'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치고 곧바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수업 일수를 딱 맞게 채우도록 계획하고 왔던 터라, 학교의 공백이 적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본인이 해야 할 공부를 매일 했다. 물론 공부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놀면서도 그날 본인이 해야 할 것을 꼬박꼬박 해낸 아이들이 대견하다. 형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운 초등1학년 보물이도 조금씩 습관이 잡혀 가고 있다. 새삼 언제 이렇게 컷나 싶다. 


"엄마, 거북이 보고 오면서 서핑 조금 하고 와도 되?"

"시간 봐서 최대한 서핑하고 오는 쪽으로 하자."

거의 매일 서핑 레슨을 받으며 바다에서 살다시피하더니 아이들은 이제 수준급이다. 아이들의 운동신경이 좋아서 그런지 뭐든 금방 습득한다. 이녀석들 해마다 하와이에 와서 서핑을 하겠단다. 그래 그게 뭐가 어렵겠니. 또 오면 되지.


어제는 터틀캐년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야생 바다거북을 만났다. 수중카메라를 안챙겨 가서 얼마나 아쉬웠던지. 기왕 그렇게 된거 눈으로 실컷 담았다. 투명하고 푸른 바닷물에 눈이 부실듯 말듯 햇살이 일렁였다. 바다거북이 때로 있어서 조금은 당황했던 것도 잠시. 그 동화같은 관경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마치 바다거북이 옆에 와서 같이 놀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촬영을 못한 아쉬움이 나보다 더 컷는지, 엄마도 오늘 꼭 함께 가서 촬영을 하란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수중카메라를 얼른 챙겼다. 오늘도 바다거북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함께 놀자고 하는 친구 같았던 바다거북을 카메라에 꼭 담아 올 수 있기를.


이미지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니가 왜 거기서 들어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