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여행을 떠나와 오랜만에 늦잠을 잤어. 부지런해서 기쁜 날이 있고, 게을러서 기쁜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야. 11시가 넘어 일어났지만 기분이 좋았고, 몸도 가벼웠어. 이 게으름을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제 잠이 들며 나도 모르게 ‘이제 한 시름 놓자’라고 혼잣말을 했었거든. 일어나 어제 입었던 티셔츠와 속옷을 빨면서 문득 그 말을 했던 게 떠올랐어. 그러면서 ‘시름’이란 단어와 그 뒤에 오는 동사를 볼 때 (시름을 덜다, 시름을 놓다, 시름시름 앓다) ‘시름'은 옛날 사람들이 스트레스, 트라우마 같은 마음의 병을 일컫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
테라스에 빨래를 널고 숙소에서 주는 따뜻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어제 적다만 일기를 마저 썼고, 테라스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했어. 오늘 도착한 여행자 무리와 인사를 나누고 같이 담배도 피웠고, 그들이 모두 나가고 다시 조용해진 테라스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어. 테라스 아래로 좁은 길이 있는데 가끔씩 사람들과 오토바이가 오갔고 그 길에서 눈을 들어보면 아주 넓은 초원이 펼쳐졌어. 그 초원 한가운데로 파고다가 보였는데 오늘은 저기까지 산책하면 좋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어. 보통 때와 다른 점이라면 내 어깨엔 카메라가 들려있지 않아. 맞아 오늘은 카메라 없이 여행하는 첫 번째 날이야.
불탑은 숙소에서 봤을 땐 멀지 않아 보였지만 바로 가는 길이 없어서 조금 돌아가야 했어. 가는 길에 마주쳤던 버려진 상자에 몸을 웅크리고 자던 고양이, 배가 많이 나온 아빠와 볼살이 통통했던 딸, 걸쇠가 떨어져 나간 대문 등 만약 카메라가 있었다면 당연히 찍었을 장면을 오늘은 그저 바라보기만 했어. 그렇게 지나치면서 만약에 이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겼다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도 생각했고.
파고다는 멀리서 본 것과는 많이 달랐어. 반 이상 무너져 있었고,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 입구는 수풀로 뒤덮여 있었어. 거의 폐허에 가까웠어. 또 무너진 탑과 탑 사이로 나무가 자라있었는데 마치 뱀처럼 탑을 휘감고 있었어. 나무의 크기로 보아 아마 탑이 원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던 나무가 아닐까 싶었어. 나무 옆으론 벽돌 조각이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그 자체로 작은 탑처럼 보였어. 왜 산 초입에 돌 무너기를 쌓아 소원을 비는 곳처럼 말이야. 남아있는 잔재로 유추해볼 때 원래 이곳엔 세 개의 불탑이 있던 것 같아. 그나마 하나는 탑의 모양이 남아있었고 들어가는 입구 역시 무너지지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폐허 같은 외관과는 다르게 안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사람 서넛이 들어가면 가득 찰 만큼의 좁은 곳이었고 그 안엔 오직 불상 하나만 놓여있었어. 팔과 얼굴이 떨어져 나가고 몸통만 남아 있는 불상.
그 앞에 선 순간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이곳에 잠시 머물고 싶단 생각이 들어 불상 맞은편에 앉았어. 난 불교도는 아니지만 불상과 이 공간에서 단둘이 있다는 게 마음이 편안했어. 내 눈앞에 대상은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비록 몸통만 남았지만) 나에겐 부처님, 예수님, 알라 어떤 이름이 붙일 필요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고, 그러기에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았어. 그렇게 나도 모르게 “누군가 찾아온 게 오랜만이죠?"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어. 파고다 안은 조용했고 밖 역시 넓은 초원이기에 수풀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어. 난 다시 말을 이어갔어. “제가 무릎을 꿇지 않아도 괜찮겠죠? 편하게 얘기하고 싶거든요.” 다시 한 번 침묵이 이어진 뒤 난 내 이야기를 했어.
"무슨 얘기를 먼저 할까요? 제가 어제 사진을 찍는데 제가 탔던 배와 다른 배와 부딪혔어요. 쾅! 하고 부딪히는 순간 전 긴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 들었어요.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있어서 다른 배가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거든요. 제가 그러고 있었던 건...뷰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있으면 제가 사는 세상에서 손가락 한마디만큼 벗어난 느낌이 들어요. 그 안의 세상은 사각형의 조용한 세상이에요. 반면 제가 사는 세상은- 이 얘기를 하면 긴데 전 사실 미얀마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에요. 당신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요. 아니 그전에 어제 제가 본 노을 얘기부터 하고 싶어요. 제가 태어나서 본 노을 중에 가장 아름다웠거든요. 그렇게 아름다울 건 본 적이 없어요. 세상에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고, 제가 그 말을 쓸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용서받는 기분이 뭔지 아세요? 어제 노을을 보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요. 저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 말이에요. 회개란 말은 불교에서 쓰지 않죠? 하지만 당신은 그 뜻을 아시리라 믿어요. 노을이건 회개 건 당신이 만드셨을 테니까요.” 잠깐 동안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어. “전 사실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저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오늘은 그저 제 얘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 시대에 왜 태어났는지, 이게 몇 번째 삶이고 업보가 무엇인지 같은 건 묻지 않을게요.
어제 자면서 혼잣말로 “이제 한 시름 놓자"라고 말했어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는데요. 전 그 말을 하고 나서 펑펑 울었어요. 울음이 그렇게 주체할 수없이 터져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마음속에 아주 커다란 덩어리를 뱉어내는 느낌이었고, 이걸 여태껏 왜 품고 살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한시름을 놓자"라고 말하기 전에, 전 누워서 머릿속에 제 모습을 그려봤어요. 검은 바탕에 서있는 서른다섯 살의 한국인,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와 큰 가방을 메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를 내려놓은 저를 머릿속으로 그려봤어요. 카메를 바닥에 내려놓자 연기처럼 사라지더라고요. 그 다음엔 배낭을 내려놓고 싶어서 똑같이 했어요. 그렇게 제가 짊어진- 저라고 부르는 혹은 불리는 것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아 봤어요. 반대쪽 어깨엔 멘 렌즈 가방도 내려놓고, 박원진이란 이름과 한국인이란 국적도 내려놨어요. 2016년이란 제가 살고 있는 시대도 지웠고요. 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부모님의 아들이란 것도, 예쁜 한 살 위의 누나, 제 곁에 있는 하모와 보고싶은 친구들, 동생들, 형 누나들도 내려놓아 봤어요. 제가 영화 일을 잘 못해서 결국 실패했다는 것도 내려놓고, 좋아하는 시의 구절과 시인의 이름도 내려놓았어요. 이 먼 곳에 와서도 가끔씩 떠올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았던 기억과,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던 기억도 내려놓았어요. 수치심과 분노, 남들이 절 보는 시선도 내려놨어요. 제가 좋아하는 모자와 나이키 운동화, 멋진 자켓, 늘 끼고 사는 아이폰 같은 나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내려놓고 나니 저는 알몸이었고 그 모습 역시 한참 바라봤어요. 내려 놓을수록 저는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지만 한 편으론 두려웠어요. 하나하나 지워질수록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실패한 영화인’이란 것도 한 편으론 제가 붙잡고 있는 ‘타이틀’이었단 생각을 그 순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내려놓았어요. 좋건 싫건 전 늘 무언가로 살아야 했고 전 그 세상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거든요. 나이도 지웠어요. 나중에는 남자란 성별도 지우고 저의 키와 외모 같은 것들도 다 내려놓았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내려놓고 저를 바라봤어요.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게 저이기도 했어요.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낯설었지만 제 마음의 어느 부분은 그 순간 처음으로 숨을 숴지는 것 같았어요. 저는 스스로를 부를 이름이 없었고 그래서 부를 필요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마음의 아주 먼 구석자리부터 따뜻해지더라요. 살갗에 태어나 처음으로 햇빛이란 게 닿은 느낌과 비슷할까요. 이 따뜻함이 어제 봤던 노을이란 생각이 들 때 저도 모르게 "이제 한 시름 놓자"라고 말했어요.
제가 할 얘기는 이게 다예요. 아침에 일어나자 전 다시 원래의 모습이었어요. 거울 앞에서 제 몸과 얼굴의 주름을 확인하고 그 몸에 제가 좋아하는 옷을 걸치고, 아이폰으로 오늘이 며칠인지, 지도 앱의 작은 동그라미로 제가 있는 곳의 위치를 확인했어요. 다른 점이라곤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나오지 않은 것뿐이에요. 오늘은 그러고 싶었거든요. 아무리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제가 원할 때 내려놓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반대로 저의 시름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몸통 밖에 남아있지 않은 당신을 무척 찍고 싶어요. 제가 어제 저의 하나하나를 지워나가던 순간이 떠오르거든요. 하지만 오늘 하루는 사진을 안 찍기로 마음먹었기에 내일 다시 찾아와서 잘 찍어드릴게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난 마지막으로 합장을 하고 그곳을 나왔어. 숙소까지 돌아오는 길에 몇몇 장면에 걸음이 멈춰 졌지만 카메라가 없으니 사진을 찍진 못했어. 그 대신 앞으로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를 생각해봤어. '실패한 영화인’ 대신 사용할 어떤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