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도화지
수영에게.
초등학생 때 디즈니에서 만든 ‘알라딘'을 봤었거든.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난 후 엄마에게 "근데 왜 램프의 요정은 소원을 세 가지만 들어줘? 원하는 개수만큼 들어주면 안 돼?"물었던 기억이 나. 그때 엄마는 “다 들어주면 네가 할 일이 없잖아."라고 얘기 하셨어. 난 그 말 뜻이 이해가 안되서 엄마 얼굴을 쳐다봤는데 엄만 웃으면서 "다 들어주면 엄마가 아들한테 해줄 게 없기도 하고.”라고 하셨어. 어렸던 난 앞에 말은 싹 잊고 '엄만 내게 지니 같은 존재구나'라고만 생각했었지. 실제로도 엄만 그런 사람이었어. 심지어 소원의 개수 제한이 없는 지니였지. 내가 엄마에게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할 나이가 되고 나서야 엄마가 앞서 했던 말을 되새기게 됐어. ‘내가 할 일'
양곤에서 큰 칠판에 소원을 적는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그랬고, 새해 첫날 일기장에 ‘새해 소원'이란 글자를 쓰고 결국 다음 글을 적어내려가지 못했을 때도 그랬어. 내게 소원을 비는 건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내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묻는 일이야. 기억해보면 어릴 때 소원을 비는 건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과 비슷했어.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그리고 색칠하고- 잘못 그리면 지우고 다시 그리면 되는 일이었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소원을 비는 게 새 도화지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그림에 덧칠을 하는 일이 됐어. 선 몇 개를 더 긋거나 지울 순 있지만 이미 그린 형체는 고칠 수 없는, 색깔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하기에 결국 원하는 색에서 멀어지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난 뒤 더 이상 꿈이란 걸 꾸지 않게 된 것 같아.
하지만 오늘은 의식적으로 새 도화지를 생각해. 새하얀 도화지 위에 새로 깎아 끝이 반듯한 연필을 놓고, 또 샐 수 없이 많은 개수의 물감과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붓도 같이 상상해.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봐. '만약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면 어떤 걸 그릴래?’라고 말이야. 이제는 원래 천일야화 속 이야기엔 소원의 개수 제한이 없다는 걸 알지만 난 여전히 디즈니의 설정이 좋아. 인생이란 건 취사선택이란 걸 알려주는 것 같거든. 그래서 딱 세 가지만 정하기로 했어. 사실 바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세 시간째 이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직 한 가지도 정하지 못했어. 그래도 수영아, 막상 흰 도화지라고 생각하니 여러 소원이 떠오르고 난 이게 정말 기뻐. 예전이었다면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던 일, 너무 어렵다고 미리 선을 그었던 일을 다시 마음속에 그려보게 돼. 서두르지 않고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세 가지 소원을 정해보려고 해. 한 가지씩 정해질 때마다 꼭 편지를 쓸게. 그 때마다 네가 기쁘게 읽어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