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작가라니내가작가라니
Sep 23. 2021
친구라는 말이 어려워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넓은 운동장 주변으로 10살인 우리가 가랑이를 한껏 찢어야 올라갈 수 있는 계단들이 있다. 그 계단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앉아있고 여자 친구 하나가 홀로 앉아있다. 그 친구와 원래 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난 친구 옆에 가서 앉았고 그 친구가 말했다. “친구들이 나랑 놀아주지 않아. 나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 내가 무어라 대답했는지도, 나의 표정도, 마음도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그 이후였다. 동네의 작은 보습학원에 다녔었는데 학원 입구 신발장에 넣어두었던 실내화가 자주 없어지기 시작했던 것이. 양말로 맨바닥을 밟으며 실내화를 찾아다니는 날이 늘어났고 하루는 쓰레기통에서 실내화 한 짝을 발견하기도 했다. 얼마나 속상했을까? 울기도 했으려나. 그 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모르겠다. 10살의 작은 아이가 도대체 어떻게 견뎌냈던 걸까.
학교를 통과하는 내내 새로운 무리에서 겉돌지 않고 생활하는 일이 꽤 벅찼다. 밖으로 내색하지 못했을 뿐. 나름 영악해진 나는 무리에서 제일 만만한, 혹은 잘 나가는 친구들을 고르고 선택했다.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고 다시 실내화를 찾아 헤매지 않으려면 영리하게 굴어야 했다. 적당히 듣기 좋은 말들을 해주고 적당한 친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무리와 하나 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그 무리에 있기 위해 나는 나를 감췄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말과 행동을 해도 되는지도 체크했다. 머리가 아팠다. 결국은 그 무리에 있는 나 자신이 싫어지기도 했다. 저들은 어떻게 저런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되는 걸까. 궁금했다.
나의 전략적 선택과 불손한 동기로 시작된 사이였지만 소중한 친구들을 찾았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나의 친구를 소개해보려 한다. 이혜원과는 중학교 때 만나 20여 년을 나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중2 우리 반 반장이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보던 아이 었다. 어떤 친구들 사이에서도 빛을 내는 그런 아이. 같은 반이 되어 함께 수학여행 가는 날, 난 다분히 의도적으로 혜원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버스에서 중학생이라면 꼭 해야 하는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은 god가 sbs 인기가요 1위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얜 윤계상을 좋아했다. 나는 그 시절부터 대단한 성시경 팬이었고. 취향이 대단히 달랐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단체기합을 준 아주 못된 체육선생님, 서로가 좋아하는 남자, 좋아함을 당하는 불편함 같은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눴다. 경기도 광주에서 경주까지. 꽤 먼 여정을 잠 한번 자지 않고 조잘대며 갔다.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시작이 불손했다는 일말의 죄책감이 한 번씩 나를 괴롭혔지만 한 번도 친구에게 고백할 순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문득 친구에게 그때 내가 너를 선택했다고 이야기했고, 친구에게 끝도 없는 키읔이 배달되어왔다. 아 쪽팔려….
다른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도 떠오른다.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은 등등에 들어가는 이름들과 얼굴을 매칭 한다. 난 왜 웃음이 나는 걸까.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은 왜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는 걸까. 나만의 기준에 따라 선택당한지도 모르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친구들.
많은 시간이 지난 만큼 우리의 연결고리도 흐릿해져 가끔 우리가 아직도 그 시절의 농도로 친한 친구일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난 친구라는 말 자체가 어려워.’라고 벽을 치고, 함께한 시간을 부정하려던 그때, 백미러로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살짝 올라간 입매가, 콧방귀처럼 나오는 웃음이 말해주었다.
“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들은 여전히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잖아! ”
이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감정들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는 것이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 글을 쓰며 새록새록 떠오르는 감정 자체로 특별해졌다. 더는 나에겐 남아있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머쓱해졌다. 먼지를 닦아 오래된 추억상자를 다시 열어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기억나지 않으니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며 고대로 내다 버릴 생각만 했으니 친구들 입장에선 내가 아주 괘씸할 것 같다. 두 번째 손가락 끝에 살짝 침을 묻혀 먼지를 쓱 닦아내기만 했을 뿐인데도 함께한 기억들은 반짝거리는 빛을 쏟아내고 있다.
마음속 작은 10살의 아이야.
다행히도 우린 좋은 친구들과 함께였어.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그 시절을 잘 지냈구나 싶어.
서로의 위치와 환경이 달라져 물리적인 왕래가 줄어든 일로 더는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하자. 그들과 함께한 기억은 언제나 너를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되돌려 줄 거야. 그 기억만으로도 우린 가장 특별한 친구들을 가진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