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음의 습관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유명한 책이지만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다 읽은 후 다음 책으로 삼아야겠다. 문제는 그 책이 두 권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한길사 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라 시대 상황도 공감이 잘 안될 것 같다. 결국 못 읽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썼는데, 이방인으로서 쓴 것 같다. 그는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독재의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힘을 ‘공동체’에서 발견했다. 그는 미국 곳곳에서 발견한 종교와 시민사회의 공동체성에서 독재를 이길 힘을 발견했다.
공동체는 한 사람의 독주로 이뤄질 수 없기에 민주주의가 자라기 좋은 토양이다. 이는 자연스레 독재의 가장 큰 적이 된다. 독재 권력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게 자기를 위협할만한 힘인데, 그 정도 힘이 생기려면 사람들이 뭉쳐야 하기에. 아마도 토크빌은 독재를 경험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고민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공동체만 답인 것은 아니다. 다만 독재에 맞서기 위해서 공동체라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이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붕괴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창조적인 긴장 속에서 끌어안는 – 다른 쪽의 어두운 가능성을 서로 견제하도록 하면서 –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마음의 민주적 습관에 열쇠가 된다. (92p)’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서로 공명하며 균형을 이룰 때 민주주의는 독재를 이기는 힘이 되고 자체적으로도 건강하게 발전하다.
파커 파머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이전에 개개인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민주적 습관’을 중요시한다. 마음의 습관에 관한 아래의 말은 명문이다.
‘누군가 내게 21세기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인에게 필요한 마음의 습관을 두 단어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뻔뻔스러움과 겸손함이라는 말을 고르겠다. 뻔뻔스러움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내 의견을 분명하고 자신 있게 발언하는 것만큼 특별히 타인에게 열린 마음과 존중하는 태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겸손함과 뻔뻔스러움의 마음을 갖추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민이 다수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92p)’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알고, 그에 못지 않게 타인에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존재. 어느 상황에서나 그런 사람은 환영 받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시민도 그런 사람이다. 파커 파머는 그런 시민이 다수가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고 희망적인 전망까지 했다. 사실 그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돼야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자라날 테니 어떻게든 이뤄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저자의 현실성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공동체적 경험을 했기에 막연한 이상론을 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민주적 시민이 다수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이 지닐 수 있는 약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설명을 덧붙인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 거기에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관여’ (101p)’
‘윌리엄스는 결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의 마음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를 향해 움직인다고 거짓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관대함과 정의로움만큼이나 파시즘과 종족학살에도 책임이 있다. 윌리엄스가 단지 주장하는 것은 마음은 민주주의에 걸려 있는 질문들과 씨름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103p)’
마음에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모든 일이 잡음 없이 진행 되기만을 바란다면 그게 씨앗이 되어서 종족학살이나 파시즘이 생기기도 하는거고, 우리가 마음에 관대함을 품고 정의롭고자 한다면 관대함과 정의로운 행동이 꽃 필 여지도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우리 마음부터 민주적인 상태를 선호해야 하고 그게 파커 파머가 말하는 마음의 습관이다. 마음이 바뀌어야 행동도 달라지기에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 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정적’인 것과는 다르다. 파커 파머가 사용하는 마음이라는 말은 통합적인 방식의 앎을 가리킨다. 그 앎으로 민주주의의 복잡성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파커 파머는 ‘마음을 느낌으로 축소하고 환원시켜버리면 정치는 감정 조작의 위험한 게임으로 변질되어 결국에는 몇몇 종류의 전제 정치로 귀결될 수 있다.’ 며 주의를 요한다.
하지만 ‘통합적인 방식의 앎’으로서 마음의 역할을 정의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권력의 장소를 제공하고,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재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함께 부여할 것이다. (108p)’ 마음은 진정한 힘이 생기는 곳이 된다.
‘참가자 가운데 한 남자는 아이오와 주 동북부에서 25년 동안 농사를 지었고, 이후 10년 동안 농무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피정이 진행되는 동안,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한 가지 곤경에 관해 여러 차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는 표토의 보존에 관련된 어떤 정책을 결정해야 했다. 표토는 귀중한 천연자원인데, 지속가능성보다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며 사업을 운영하는 농업회사들에 의해 파괴되고 잇으며, 이로 인해 식량 공급의 질과 지구의 안전이 위험에 빠지고 있다.
그는 여러 번 이렇게 말했다. “농부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요…… .” 그는 또한 그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할 경우 심각한 곤란에 처한다는 것, 특히 농업회사의 돈을 받은 상사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요일 아침 마지막 시간에 농부의 마음을 따라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잠시 깊은 침묵이 흐른 뒤 어떤 참가자가 물었다. “상사에게 어떻게 대답하려구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대답했다. “그러나 이 피정에서 시간 보내면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상사에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나는 땅에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들은 것은 당면한 복잡함과 협상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전략이나 전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 수순을 밟아가는 데 필요한 견고한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110p)’
눈 앞에 당면한 자신의 위기에만 골몰하지 않고 조금 더 통전적인 방식으로 사태를 바라보게 하는 게 진정한 마음의 힘이다. 그 마음 안에서 민주주의를 보다 더 지혜롭게 전진시킬 힘이 생긴다.
“나는 땅에 대답합니다.” 라고 한 이의 말처럼 독재를 거부하고 참된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타인의 의견을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 역시 마음에서부터 꽃 피운다. 이 책의 부제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에 대한 답이 이곳에 있다. 마음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