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맞서는 방법, 가장 두려운 것일수록 들여다보라.
특정 대상, 현상에 대한 '두려움'등의 감정들은 막연히 둘수록 두서없는 형태로 밀려온다.
그럴수록 감정은 세세하게 분석하고 정리해서 차곡차곡 개어줄 필요가 있다.
많은 감정 중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보기 위해 했던,
'죽음' 관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지만, 나를 위해서.
#죽음에 대한 시작점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저학년 즈음 소멸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던 것은 기억난다.
눈 덮인 밤거리를 걷다가, 내가 사라진 순간 이후를 생각했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계속 생각이란 걸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멈춘다고?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후로도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수시로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물론 어릴 적 물음은 의식은 zero의 상태로 off 된다로 정리되었다.)
생각의 시작점을 계속 더듬어 본다.
어릴 적에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계기도 없었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많은 인생의 구성요소 중에 죽음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는지,
아, 어쩌면 이게 시작일까.
어릴 적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로 3년 간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아버지는 때때로 그 지루한 병상 생활을 버티기 위해
병원에서 만든 친구들과 금지되었던 고스톱을 하러 영안실 뒤 언덕으로 모이곤 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 언덕을 오르실 때 뒤에서 같이 휠체어를 밀어드리곤 했었는데
그때 언덕을 오르며 들렸던 누군가의 울음소리,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의 모습들.
멀리서 보는 죽음은 너무도 낯설고 무서웠다.
성역에 잘못 발을 들인 느낌에 나는 도망치듯 뛰어내려왔다.
죽음을 가까이 접한 최초의 기억이다.
#입관, 죽음을 들여다보다.
죽음을 가까이 접한 인생 두 번째 기억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상주로서 사망 신고부터 발인까지 모두 처리했고
남은 건 입관 전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물어볼 수도 쉽게 찾아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두려웠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누군가는 유튜브에 입관식을 올려놓았다.)
이럴수록 분석하고 세세하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현장에서 아버지를 이송해 온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발견 당시 아버지는 어떤 표정이었나요?"
"편안한 모습이셨습니다."
"저 위해 하시는 말씀이시라면 괜찮으니, 솔직하게 말씀 주셔도 괜찮습니다."
"정말 편안한 얼굴로 계셨습니다."
"그럼 보통 이렇게 사망하는 경우는 어떤 모습인가요."
"보통은 몸부림의 흔적들이 있거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떠나는 순간은 적어도, 그 정도의 고통이 어쩌면 아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죠."
"이런 일, 무섭진 않으신가요?"
"처음엔 무서웠죠. 그런데 오히려 가만히 더 들여다보면 괜찮아요."
호명을 받고 호흡을 하고 들어섰다.
구급대원이 말해준 방식대로 가만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생전 아버지 모습 그대로 누워 계셨다. 이상했다.
가까이가서 아버지를 한창을 내려다보았다.
그 다음 눈과 코, 볼, 손도 몸도 발도 만져보았다.
모든 것이 차갑게 굳어있었다.
죽음을 최대한 내 감각을 통해 세세하게 확인하고 나니
두려움이 가셨고 마음이 편해졌다.
화장 후 몇시간 전에 큰 몸집의 아버지는 몇줌의 재로 남으셨다.
말로만 들어왔던 '그저 한줌의 재'라는 문장이 맴돌았다.
우린 그저 유기체였구나.
죽음에 대한 첫 경험이였다.
#죽음은 세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가깝거나 멀거나 죽음은 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힘들었고
뉴스를 보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힘들었었는데
(세월호 뉴스는 여전히 열어보지 않고 있다.)
놀랍게도 그날을 이후로 죽음에 대해 덤덤해졌다.
아, 그냥 인생의 한 요소구나. 자연스러운거구나.
가장 두려운 것을 이겨내기 위한다면 가장 가까이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방식은 그렇다.
죽음과 친해지려는 20년 가까운 연습을 통해도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란건 여전히 변함없고
타인의 죽음은 누구든 그 소멸은 가슴이 아플 것이지만.
그래도 그 두려움으로 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