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어린이를 지키는 방법

일본의 치안, 어린이 방범

by 서랍지기
한 통의 문자 메시지

도야마 서 경찰서입니다.

3월 22일 (목) 오후 4시 반경,
도야마시 후츄마치 타지마 지구 내에서,
수상한 사람이 여자 초등학생에게
“이름이 뭐냐”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남자의 특징은,
연령 30세 정도, 마른 체형,
아래위로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썼습니다.

*경찰은 길거리 순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이나 차량을 목격한 경우에는
곧 110번으로 통보하고
인물의 특징 (연령, 체격, 복장),
차량번호를 연락해 주십시오.

여느 때처럼 유치원에서 돌아올 큰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수상한 사람이 출몰했다는 연락이었다. 연중 한두 번의 곰 출몰 주의 연락을 받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곰은 눈으로 보면 곰인지 알 수 있지만, 사람은 겉만 보고 수상한지 아닌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아이가 외출할 때마다 같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일이 일어난 후츄마치라는 곳은 산이 가깝고 논밭에 둘러싸인 작은 시골 마을이다. 밝은 한낮에도 행인이 뜸한 외진 곳이 많은데 가로등이 거의 없어 시내보다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3월 말이면 봄 방학과 새 학기를 눈 앞에 두고 아이들이 들떠있을 시기다. 그맘때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한 눈만 팔아도 금세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마을 어른들은 이웃에 사는 어린이들의 얼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다면 가볍게 인사를 했거나,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면 길을 물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낯선 사람이 다짜고짜 이름을 물었다면 어린이는 틀림없이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불안


불안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말 못 하는 동물도 본능적으로 누가 자신을 해하려는지 잽싸게 알아챈다. 작고 약한 동물들은 몸을 지키기 위해 직감이 발달하여 위화감에 더욱 민감하기 마련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쾌한 상황이 불안한 감정으로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는 어린이와 여성에게 접근하여 불안을 느끼게 한 사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주저 없이 ‘수상한 사람’이라 지칭한다. 그 사람이 실제로 나쁜 짓을 계획했거나 시행했는지의 여부는 문제시되지 않는다. 잠재적 가해자의 선정 기준이 직접적인 범죄 피해나 신고 사실의 유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주었다는 사실’인 것이다.


경찰은 특정 상황에서 개인이 해를 입기 전 느꼈던 직감을 그 당시 상황을 판단하는 데에 주요한 단서로 본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가볍게 넘기지 않고, 불안이 유발된 상황을 세분화하여 대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잠재적 범죄에 대한 경찰의 이러한 초기 접근 방법은 범죄 예방의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정보 공유

일본에서는 범죄 사건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사안’이라 하고, 이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수상한 사람 정보 사안

1. 말 걸기
2. 따라다니기
3. 속여서 데려가기
4. 성희롱
5. 사진 촬영

이 중에서 '말 걸기’ 사안은 비교적 가볍게 생각되기 쉽다. 말 거는 것은 사교적 행위에 포함되고, 이름 한번 묻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치명타를 입고 쓰러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불안을 유발하는 말 걸기’는 다르다. 이는 특히 다른 사안들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어, 충분히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경찰서의 홈페이지에는 ‘말 걸기’와 ‘따라다니기’ 사안을 연령별로 구분하여 각각의 발생 장소, 시간대 등을 게재하고 있다. 또한 ‘안전정보넷’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원하는 지역의 어린이, 여성의 안전, 범죄 발생(검거) 정보 등의 내용을 등록한 사람에게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로 공유한다(도야마현 기준).


경찰 외에도 초등학교를 관할하고 있는 교육 위원회 등이 아동을 지키기 위해 배포하는 메시지나 팩스 등도 있다. 지역 주민에 의한 감시가 범죄자로부터 몸을 지키고, 범죄를 방지하거나 체포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정보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어린이 방범

1. 어린이 110번의 집


일본에는 어린이들이 집 밖에서 위기를 느꼈을 때 피신할 수 있는 긴급 피난소가 있다. 이는 1997년 효고현에서 발생한 고베 연속 아동 살상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 설치되었다. 통학로에 있는 상점이나 민가가 피난소로 정해진 곳도 있고, 철도역과 택시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여러 기업들이 포스터를 자체 제작하여 점포를 피난소로 지정하는 등 어린이 방범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일본 맥도날드의 어린이 방범)


2. 어린이 방범대


방범 순찰은 아주 수수하고 보상 없는 자원봉사 활동이지만, 잠재적 범죄를 억제한다.

- 순찰대 대표자의 메시지 중


가끔 녹색 조끼를 입고 초등학생 하굣길을 순찰하시는 분들을 본다. 도야마현에는 어린이와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방범대가 결성되어 있다. 대원들은 순찰 외에도 매년 초등학교에서 방범 표어를 모집하거나 각 방범대 리더 연수회를 개최하는 등 마을의 지킴이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3. 유치원 방범


최고의 호신술은 바로 ‘도망가는 것’이다. 특히 약하고 힘없는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일본의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잘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을 경찰들과 함께 훈련한다. 실제로 유치원 내에는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를 가장해 수상한 사람이 들어오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대비하여 유치원에서는 교실에 피난 방송을 하거나 경찰서에 연락을 취하고,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피난장소로 이동하는 연습을 한다. 또한 평소에 유치원 버스는 보호자를 확인한 후에야 어린이를 버스에서 내려준다. 기다리는 사람의 정체가 불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어린이를 다시 버스에 태워 유치원으로 돌려보낸다.


안전과 치안


이불 밖에는 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세상에 완벽히 '안전'한 곳은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치안’이다. 인간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천재지변조차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에 철저한 대책을 세운다. 하물며 범죄와 같은 인재(人災)는 그 예방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과전이하(瓜田李下)'. 이 말의 뜻은 ‘관계자 외 접근 주의’하여 의심받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보호자가 아닌 사람이 어린이에게 접근할 때에도 적용된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은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 받을 만한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누가 봐도 충분히 의심될 만한 상황을 목격했다면 경찰에 연락하여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은 전염되기 쉽지만,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다. 특히 범죄 예방에 한해서는 정보 공유의 순기능이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 촘촘히 짜인 그물망일수록 고기가 빠져나가기 힘들듯,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수록 잠재적 범죄자의 검거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는 어벤져스의 슈퍼 히어로들이나 미션 임파서블의 최첨단 방범 시스템이 있다면 더없이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득, 한국에서 감시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 슈퍼 히어로는 아니지만 슈퍼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등하굣길 어린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챙겨주셨던 기억이 난다.


체계적이고 철저한 방범 제도의 구축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들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는 것은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지켜봐 줄 '선한 사마리아인들'인지도 모르겠다.


*110번: 우리나라의 112번에 해당하는 일본의 ‘경찰 통보용 긴급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