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한 친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마감기한에 쫓기고 있다. 정해진 마감기한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이 그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다. 그 압박은 때로 더 좋은 윤활제가 되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라고 불리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마감기한이 있는 일을 약 4년 정도 진행했었다. 특허 기술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납품하는 일이었는데 동료들과 '지식노동'이라고 부를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한 달에 한번 마감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 처음에는 좋았다. 마치 시험기간이 끝난 뒤 자유를 누리는 대학생처럼 한 달에 한번 마감을 끝내는 일이 작게나마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그 성취감에 취해 각성되어버린 나의 뇌는 '힘들어!'와 '끝났다!'를 반복하더니 결국에는 그 과정조차 무뎌지게 되었다.
마감기한이 있는 일이 때로는 나를 자극시킨다. 나는 본래 게으른 사람이라 주어진 기한이 있다는 것을 연료 삼아 일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끝이 주어진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 '품질'이 떨어지게 되었다. 끝을 위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일의 '완성'보다는 일의 '끝'을 원했고,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억지로 일하며 그렇게 일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마감이라는 단어가 스트레스로 치환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 돈을 받고 일하는 '계약'에 측면에서는 '끝'을 달성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지만, 이 약속을 나에게 유리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먼저는 그 일을 '어느 정도'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회사의 시스템과 직장 내의 관계들을 제외하고서도 이 일은 나를 즐겁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일을 나름 열심히 한다는 점이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돌이켜보니 단순노동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 노동 안에서 깨닫는 점과 성찰이 있는 줄로 믿지만 나의 에너지를 쏟기에는 매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나의 마감은 내가 정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일의 기준을 빼앗겨 버리면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되어버릴 확률이 크다. 재촉을 받는다는 것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수 없이 깨달았다. 하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항상 마감기한 보다 일찍 끝낸다는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마감기한에 상관없이 본인의 스케줄을 잘 지켜냈으며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의 결과물도 좋은 경우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일을 스스로 기한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이지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지 중 한 가지의 조건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노동의 측면이 아닌 나의 업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마감이라는 스트레스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는 것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길을 찾고 단련해 나가는 사람들,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