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성장과 수평성장

by 필문

누군가 나에게 '연애를 경험하면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대한 나에 답변은 '수직성장은 아닐지 몰라도 수평성장일 것'이었다.


연애나 결혼 등 인간의 삶에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는 것들을 부정하는 혹은 의심하는 시선들이 우리 사회 가운데 생겨나고 있다. 많은 부정적인 결과와 인식이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성장할 수 없고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염려와 굳이 성장하지 못할 것 같은 선택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꼭 수직으로 자라가는 것만이 성장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성장이라도 이룩할 수 있으니 일단 시도해봐라'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선택한 본인이 지는 것이며 일정 부분 미리 경험한 사람들은 일종의 조언을 해줄 뿐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어떠한 형태의 상황을 새로 맞이하는 것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수 있고, 그 세계관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해볼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러한 관점은 연애나 직업 등과 같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인가? 제너럴리스트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십 대 초반 어느 칼럼으로부터 던져진 질문이다. 왜 이러한 방향을 설정해야 하나? 에 대한 물음을 가볍게 던지고 십 년이 지난 후, 나는 어렴풋이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이끌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꿈은 꾸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번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그때마다 바뀌어왔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웬만해서는 어지간히 보통은 하는 인간이 되었다. 스스로 이렇게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았고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다행히 그동안의 시간을 헛으로 쓰지는 않았기에 다양한 경험들이 내 삶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모습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특별한 재능이나 열정을 가지고 한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마다 자신만의 무기를 가진 그 모습이 부러웠다. 말이 좋아 '제너럴리스트'이지 결국에는 이렇다 할 무기를 가지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로 절락해버릴 수도 있는 아찔한 노선을 걷는 사람일 뿐이었다.


일전에 TED에 강의에서 'Multipotentialite'(멀티포텐셜라이트)를 주제로 강의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해당 강의에서 설명하는 멀티포텐셜라이트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양한 분야의 도전하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 결과 다양한 경험들이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 병합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결과는 전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 강의의 내용에 감명받아 여전히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나지만, 때로는 뚜렷한 결과도 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나의 운명이라면 어쩌겠는가? 다만 이러한 나의 삶 속에서 좋은 점들을 하나씩 찾아나가야 함은 필연적인 것이다.




다행히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나는 상대적으로 덜 확신하고, 덜 기대하며, 덜 걱정하게 되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공감할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 가운데 여러 번 부딪히다 보면 때로는 용감해지고, 때로는 마음을 열어두며,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인드가 몸에 장착이 된다. 확신하며 다가갔을 때에는 실망감이 크다는 사실, 기대했을 때 얻지 못한 서운함, 따라서 그 무엇도 기대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어쩌면 '새옹지마'를 몸소 경험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앞서 언급한 '멀티포텐셜라이트'의 강점 중 한가지는 이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상을 꿈꾸지만 환상을 갖지 않게 되었고, 기대하지만 급작스러운 고난에도 초연할 수 있으며, 때로는 타인의 행동이나 상황에 분노하지 않는 여유로움을 장착하게 된 것 같다.


이러한 것을 나는 결국 수평성장이라고 부르고 싶다. 연애나 커리어 등을 포함한 인생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수평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기대한 만큼에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환상이 깨져버린 체 오히려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이 더 많이 쌓일수록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며, 언젠가는 그러한 경험들이 나도 모르는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될 수도 있음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특별한 재능이나 무기를 갖고 살아가기보다는, 조금 힘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때로는 자리를 잡지 못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넓은 세계관과 경험을 가진 그러한 사람으로 자라나갈 것이다. 그리고는 여전히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를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미래의 나는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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