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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Jul 28. 2022

이제 그만 육지로 돌아가고픈 울릉도 여행자

울릉도 백패킹 #3

울릉도 백패킹 4일 차이다. 어제는 폭우로 인해 큰 아쉬움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첫날 그리고 둘째 날 넘치는 감사함을 느꼈기 때문에 아쉬움들이 다 잊히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있던 추억과 더불어 고생들을 그대로 묻어둘 수 있는 까닭은 드디어 오늘 섬을 나가기 때문이다. 울릉도가 분명 여행하기 좋은, 특히 캠핑하기 좋은 섬은 맞지만 3박 4일이면 정말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이 정말 반갑게 느껴졌다.


배차가 최소 한 시간 간격인 울릉도 버스

스쿠터를 반납하고 떠날 때가 돼서야 타보는 악명 높은 울릉도 버스. 하지만 이것 또한 경험이지!라며 재미로 느끼고 저동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뭉게구름 핀 저동항

간밤에 비는 다 그쳤고 해가 서서히 뜨는 추세여서 오늘도 배가 잘 뜨겠거니 생각했다. 파도가 높아 보이지도, 비가 올 것 같지도 않았던 구름 낀 날씨가 오히려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역시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더니 어제의 폭우로 고생했던 시간들은 잊힌 지 오래였다.


오삼불고기

울릉도의 마지막 식사였기에 돈을 아끼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기로 했다. 꽤 많은 가게들이 1인분 식사는 받지 않거나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이 식당만큼은 그런 기색이 없어서 첫날에 이어 마지막 날에도 방문하게 되었다. 1인분일지라도 거의 20000원 되는 가격이니 만큼 결코 가성비가 좋지는 않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육지로 가는 배는 13시 배편이었고 11시부터 발권이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마무리하고 항구로 향했다. 하지만 10시 59분 갑작스레 결항 통보 문자를 받았다. 사실 너무 급작스러워서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기보다는 그러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뭐... 그래. 이래야 여행이지, 이래야 울릉도지! 하며 긍정회로를 돌리기 시작하였고 조금은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가볼 곳은 다 가봤고 도대체 뭐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안 가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나름대로의 새로운 여행의 시작 느낌이 들었다.


사동 해변

1일 차는 현포, 2~3일 차는 내수전에서 머물렀기에 그곳이 편안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어차피 여행이고 시간이 주어졌다면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었기에 사동 해변으로 향했다. 이곳은 첫날 둘러보았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았고 텐트 피칭할 자리도 많지 않아 보여서 선호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막상 와보니 바다가 너무 이뻤기에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촬영하였다.


'이러려고 내가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하고 또 사색하는 시간이 이번 여행 중에 덜 채워졌기 때문에 여기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화를 하고 이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방파제에 한참을 누워있기도 하고,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며, 육지에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덕분에 남은 여독을 여기서 탈탈 털고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헤엄치는 아이들

부모님들과 놀러 와 헤엄치며 노는 아이들을 보니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돗자리 하나 들고 떠났던 어느 계곡에서 하루 종일 놀았던 기억, 다 놀고 들어와 엄마가 집에서 조리해 온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 등 그 어린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분명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짧은 여름휴가였지만 아직도 뇌리에 박힌 것을 보니 그 나이의 나는 정말 행복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이 여행 기억이 훗날 나의 뇌리에 박혀 계속 생각이 난다면 이 순간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지금 이 여행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려고 하는 여행인지, 아니면 이미 다 커버린 나이에 떠나온 도피성 여행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공백 없이 채우는 게 나의 최선이고 만약 진정으로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면 어른이 된 내가 다시 한번 떠올리겠지. 그냥 최선을 다해서 즐기자.

 

사동 바다

푸르른 사동 바다의 빛깔을 바라보며 4일 차 여행을 마무리한다. 결항이 안된다면 울릉도에서의 진짜 마지막 날이기에 조용히 사색을 즐기며 잠을 청하려 했지만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덕분에 더욱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 순간을 뒤집어 다시금 긍정의 순간으로 만들어야겠다.


새옹지마. 부정적인 순간들이 다시금 긍정으로 바뀌는 모든 순간들을 나는 여행을 통해서 경험해왔고 나의 삶에 적용해왔다. 덕분에 심하게 감정적이거나 한탄스럽지도, 그렇다고 넘치도록 기쁘지도 않은 꾸준함을 배워나간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알게 해주는 여행을 내가 어찌 그만둘 수 있을까.


울릉도 일출 러닝

전날 밤 일찍 잠을 청할 수밖에 없던 상황과,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 덕분에 새벽에 일찍 눈을 뜨게 되었다.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눈을 뜨고 러닝을 위해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 울릉도의 아침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귀결된다. 만약 배가 결항되지 않고 어제 육지로 돌아갔다면? 사동 해변으로 오지 않고 다른 해변으로 갔다면? 시끄러운 사람들 때문에 일찍 잠을 청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 눈부신 일출을 보며 러닝을 하지 않았을, 아니 못했을 것이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힘껏 달렸다.


잘 있어 사동

아침 첫차를 타고 사동을 빠져나간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니 정말 상쾌하고 좋더라.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한 시간에 한대 오는 버스를 기다려 다시 저동항으로 향한다.


저동항

다시 돌아온 저동항의 아침이다. 이제는 꽤 많이 익숙한 곳이다. 오늘의 저동항은 어제보다 더욱 맑았고 잔잔하고 고요했다. 오늘은 드디어 무리 없이 육지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떠날 생각을 하니 아주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대로 약간의 미련을 남겨두는 것이 내 기억에 더 오래도록 자리 잡을 것 같다.


잘 있어 갈선생

지겹도록 마주했던 갈매기들과도 작별이다. 매너 없이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시는 갈선생들 덕에 가끔을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그 또한 추억으로 남기기로 한다. 한참 뒤에 돌아올게 다시 만나자.


육지로

무리 없이 강릉으로 돌아가는 배가 출항한다. 절대로 아쉬울 것 없이 완벽했던 울릉도 여행이었다. 비록 무계획으로 출발했고 예상 못한 4박 5일의 일정을 지내느라 조금은 고단하기도 했지만 역시 떠날 때 되니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담아낸 이 모습 그대로 잘 간직되면 좋겠다.


4박 5일 울릉도 백패킹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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