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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Jan 08. 2025

미리 하는 은퇴준비

2024년을 끝으로 아버지는 37년간 일하신 직장에서 퇴직을 하셨다. 한 곳에 평생을 몸 바쳐 일했다는 명예로움과 한순간에 끊어진 허탈함이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 옆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리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나는 네 번의 회사를 경험하고, 자의적 혹은 어쩔 수 없는 공백기를 보냈고 또 공백기에 들어섰다. 기성세대의 삶을 보며, 커리어의 은퇴가 인생의 은퇴인 것처럼 허무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할 수 있는 취미 혹은 나만의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번의 공백기를 거치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미리 은퇴준비를 해보는 것 같다. 마지막 회사에서는 전혀 자의적인 퇴사가 아니었기에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조금 당황스러웠고, 아마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 회사를 나오게 되면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지금 아버지가 겪고 있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의지대로 정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급변하는 사회와 상황 속에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에 이전 세대보다 더 우리는 미리 은퇴준비를 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생산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쏟아지는 콘텐츠와 오락 요소에 마음을 뺏기고 그렇게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 후회 없이 일하는 것과, 또 자의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그동안의 공백기 동안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계속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했고, 그것들을 통해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 ‘작가’라고 불릴 수 있을지, 브랜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등 -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결국 나는 주어지는 시간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음에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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