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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Oct 12. 2021

문화콘텐츠의 길을 찾다

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 2000년대 이후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탄생한 이래로 해당 개념은 국가의 산업과 개인의 일상에 주요한 키워드로 자리하며 빠르게 보편화되었다. 문화콘텐츠는 이제 대중들 사이에서도 흔히 사용될 정도로 그 의미가 일반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문화콘텐츠는 문화적 내용물이 미디어에 담긴 것을 통칭한다. 이러한 정론은 문화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엔 무리가 없지만, 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여 정교한 의미화라고는 볼 수 없다.


문화콘텐츠의 정론에 입각한다면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문화콘텐츠의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 문학, 미술, 공연, 영화, TV 드라마, 1인 미디어 방송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 매체를 가로지르는 방대한 장르의 창작물들이 모두 문화콘텐츠가 된다. Everything Is Nothing! 모든 것을 포괄하는 대상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문화콘텐츠가 단순히 범주 내의 여러 하위 장르들을 포섭하는 용어로만 기능한다면, 문화콘텐츠가 함의하는 내용은 언제든 다른 세부 용어로 대체가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문화콘텐츠라는 개념의 용도와 가치는 퇴색되고, 이는 곧 문화콘텐츠 존재에 대한 물음,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귀결된다.


문화콘텐츠가 독립된 개념으로 존재하기 위해선 기존의 유사 개념과는 다른 변별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여기서 변별성은 문화콘텐츠만의 본질적 특성과 가치를 기반으로 설정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콘텐츠가 태동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지향하는 바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래 새로운 개념이나 용어는 새로운 현상이 발현될 때 등장한다. 문화콘텐츠라는 용어는 디지털의 출현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맥락과 함께 등장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관련한 제반 형식의 변화를 불러왔고, 모든 형식에 내용을 채워주는 주된 분야가 인문이었듯이, 변화한 새로운 형식에 적합한 내용물도 기존의 인문적 정보와 지식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따라서 문화콘텐츠의 의미 형성에 있어서 디지털과 인문은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문화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두 개념의 융합적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과 인문은 문화콘텐츠의 인식적 지평을 구축하는 데에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준다. 문화콘텐츠를 디지털로만 인식한다면 디지털 기술에 기반 한 매체의 콘텐츠만을 지칭하게 되어 개념의 의미가 협소해진다. 반대로 인문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기존의 인문 분야의 결과물들, 앞서 설명한 예술 장르와 차별성이 없게 된다. 문화콘텐츠를 디지털 기술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인문 분야의 모든 콘텐츠들로 의미화한다면, 기존의 콘텐츠와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콘텐츠까지 아우르면서도 확실한 변별성을 부여할 수 있다.


예컨대 기존의 예술 장르들이 본래의 매체에 기반을 둔다면 이미 존재하는 개념에 국한되겠지만, 예술의 제작과 향유 과정에 디지털 매체의 특성이 발현된다면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고 이내 콘텐츠란 명명이 가능해진다. 가령 영화를 전통적 방식인 극장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것과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OTT 서비스로 시청하는 것은 대단한 차이가 있다. 영화 향유 방식의 차이는 개개인의 감상과 영화의 고유성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영화 미학에까지 변화를 야기한다. 두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영화는 더 이상 같은 대상이 될 수 없다. 전자는 예술 장르로서 영화, 후자는 문화콘텐츠로서의 영화로 규명될 것이다.


한편으로 디지털에 기반 한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형식을 요하게 되고, 불가피하게 내용물에도 새로움이 요청되어 진다. 그렇다면 주된 내용물인 인문 분야의 성과물 안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굴하거나, 새롭게 재조명·재창조하는 시도가 일어나게 된다. 새로운 매체가 지닌 기술적·형식적 특성들을 동원하여, 최대한 기존의 것을 새롭게 전달하는 방식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웹 드라마 혹은 넷플릭스의 드라마가 전통 방송의 드라마와 비견하여 소재에서부터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궤도를 보여주는 사례가 이를 증명해준다. 이처럼 문화콘텐츠는 디지털과 인문이라는 두 개념의 융합적 특성을 담지하고 있을 때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유튜브 플랫폼은 단편영화에 새 활로가 되고 있다. 영화 배급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단편영화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관객들을 만나게 되고, 단편영화의 창의적인 스토리는 유튜브 매체에 적합한 내용물로서 이용자들의 각광을 받는다. 유튜브를 매개로 영화제나 GV가 개최되는 등 대중들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가 창안되고 있다. Mnet에서 방영하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 프로그램은 스트릿 댄스(street dance)를 내용으로 담아내면서, 대중들의 관심 밖에 있던 무용을 세간의 중심으로 이끌어냈다. 전문 댄서들의 화려한 군무를 3분 이내의 강렬한 유튜브 콘텐츠로 재창작하여, 대중들이 편의적으로 무용 예술의 미학을 탐닉하게 만든다. 나아가 유튜브를 통해서 프로그램 구성에 대중의 참여를 높이고, 다양한 패러디 영상을 일으키는 등 콘텐츠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두 사례의 콘텐츠들은 전통 매체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여러 매체의 특성과 형식을 융합하며 대중들에게 새로운 감상과 경험을 조성한다. 분명한 문화콘텐츠이다. 콘텐츠라는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문화콘텐츠의 의미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전통 매체에 기생하는, 즉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아무런 새로운 양식을 보이지 않는 창작물들은 결코 콘텐츠가 될 수 없다. 문화콘텐츠라는 기치를 내세우려면 적어도 콘텐츠의 본질적 특성과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문화콘텐츠가 인문적 가치를 담아내고 지향한다면, 결국 콘텐츠는 인간의 삶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문화콘텐츠가 인간의 삶에 질을 제고하는 기능을 수반할 때, 콘텐츠의 진정한 가치는 번영될 수 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국에선 인간의 활동에 제약이 가해지며 비인간적 삶이 고착화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콘텐츠의 역할이 확대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콘텐츠는 비인간화되는 인간의 삶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끝까지 자리에 남아, 인간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 문화콘텐츠가 지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인간다움의 가치는 지금의 위기 상황 속에서 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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