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라하의 봄'을 보고

By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여울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슴에 남은 감정은 슬픔이 아니었다.
안타까움에 더 가까웠다.

돌아돌아
서로의 안식처에 도착한 두 사람이
이제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이
비극이라기보다

끝끝내 닿고 싶었던 평안처럼 느껴졌다.

토마시와 테레사는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한 사람은 자유를 잃을까 두려워했고,
한 사람은 사랑을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 엇갈림 속에서
그들은 수없이 상처를 주고받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비로소 평온에 닿았다.

마지막 장면이 내 마음에 남긴 것은
눈물이 아니라
‘아, 이제야 도착했구나’라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그 평온이 이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영화와 소설을 함께 지나오며
나는 자연스럽게
사랑에 대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사랑은 어디까지 책임이어야 하고,
어디부터는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가.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할 때와
삶을 짓누르기 시작할 때의 경계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이 무거워진다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사랑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대신 살아주기를 요구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 삶을 무겁게 만드는 순간에도
그 무게를 함께 들어 올리는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한결같음 앞에서
불안이 차분해지고,
사랑이 빗물처럼 스며들어
결핍이 충만해지는 경험이
내 안에 이미 남아 있다는 것도.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이
비극으로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삶을 짓누르기 전에,
사랑이 하나의 형태로 완성된 순간에
이야기가 멈추었다는 느낌.

프라하의 봄은
사랑이 가벼운지 무거운지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무게까지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사랑이 삶을 짓누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사랑이 삶을 지탱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다만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만이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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