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살지 않은 삶의 침묵을 깨우는 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고
어떤 만남은 삶을 뒤흔들 만큼 거창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 ‘루틴’에 작은 균열을 낼 뿐이다.
그러나 그 균열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안에 질문을 남긴다.
‘이대로 괜찮은가.’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던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은 안정적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학교로 향하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 설명하고, 같은 길로 집에 돌아오는 삶.
평온했고, 예측 가능했고, 그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삶은 종종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을 잃게 한다.
그의 삶에 균열을 낸 것은 다리 위에서 만난 한 여인이었다.
짧은 만남, 설명도 없이 사라짐.
그녀가 남긴 것은 한 벌의 코트와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 한 권, 그리고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였다.
그 책의 제목은 ‘언어의 연금술사’.
라이문트는 그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숨겨두었던 감정적 회피,
관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험의 부재’.
그는 타인의 고통과 문장을 분석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침묵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도는 살라자르 독재 시절을 살았던 의사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언어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을 변형시키는 힘으로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책을 대중에게 팔지 않았다.
단 100권만 인쇄했다.
읽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닿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연금술이 소수에게만 전해지는 비밀의 기술이듯,
그의 언어 역시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라이문트가 리스본으로 향한 여행은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만난 아마데우의 연인, 누이, 친구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삶은 언제나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고,
진실은 기억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간신히 살아남는다고.
아마데우의 졸업식 연설은 이 영화의 심장처럼 남는다.
그는 말한다.
군대와 폭력에 맞서기 위해 성당의 장엄함과 언어의 위엄이 필요하다고.
형식만 남은 신앙과, 권력과 결탁한 공허한 말은 버려야 한다고.
무엇보다도, 영생이 없기에 삶은 아름답고,
죽음이 있기에 매 순간은 두렵고도 소중하다고.
끝이 없는 삶은 축복이 아니라 지옥일 것이라고.
이 연설은 라이문트에게도 깊은 파문을 남긴다.
그는 깨닫는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공감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여행은 물리적인 귀환이 아니라,
정신적 귀환이 된다는 사실을.
리스본에서 돌아온 그는 이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는 이제 안다.
‘살지 않은 삶’은 옆에서 침묵하지만,
그 침묵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상실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묻는다.
지금의 안정은 진짜 선택인가, 아니면 두려움의 다른 이름인가.
그리고 답한다.
어떤 만남은 삶을 바꾸지 않아도,
삶을 다시 살게 만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