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여행
남해로 가는 길에 들린 화순 너릿재.
은실이의 삶에 평소 숨통을 터주던 곳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이 고개가 궁금했다.
사람을 다시 삶 쪽으로 밀어 넣는 힘은
대개 말이 아니라
자연의 품에서 오기 때문이다.
너릿재는 묻지 않았다.
대신 오래 준비해 둔 얼굴을 내주었다.
봄이면 벚꽃으로,
여름이면 초록의 그늘로,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겨울이면 다시 봄을 준비하는
우뚝한 나무들의 자세로.
자연은 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오르며
명복이와 은실이와 나란히 걷다 보니
이번 여행이 무엇을 향하는지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이 여정은 더 많은 장면을 채우기 위한 길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길이라는 것을.
고갯길이 깊어질수록
말수는 줄었고,
생각은 단정해졌다.
수십, 수백 해를 먼저 살아
우리를 맞아주는 풍경 앞에서
사람은 늘
조금 작아지고
조금 겸손해진다.
남해에 도착해
우리식당에서
멸치쌈밥과 멸치회를 먹었다.
남해의 맛은 요란하지 않았다.
죽방멸치를 고사리와 우거지에 푹 고아낸 맛은
말을 걸기보다
몸부터 이해시키는 맛이었다.
야들야들한 상추를 얹어 한 쌈을 먹을 때마다
바다와 가까운 삶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가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보리암은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다녀온 뒤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곳이었다.
운무가 가득 깔린 나무 사이로
먼 바다가 어렴풋이 드러났고,
오르막길 끝에서 내려다보이던
숲속의 보리암은
현실보다 한 겹 위에 놓인
신비로운 성처럼 다가왔었다.
처마는 하늘에 걸려 있는 듯했고
어릿어릿 보이던 산사는
굳이 고요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그윽했다.
사람의 마음만이
뒤늦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설렘은 소리 없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스쳤지만
차갑기보다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는 듯
맑았다.
길이 없던 시절부터
이곳은 수행하던 스님들에게
이미 길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길을 만들기 전부터
마음이 먼저
오르내리던 자리.
바다는 아래에
길게 누워 있었고
사람의 마음은
위로,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리암은 소망을 내려놓으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소망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할 뿐이다.
바다를 마주한 채
마음을 낮추는 법을
이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저녁에는
해육당에서
전복물회를 포장해
더 스테이 쉼에서 먹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보다
머무는 자리에서 먹는 음식이
더 깊이 남는 날이 있다.
친구들과
아무 기약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
전복물회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밥알이
아정아정
마음까지 곱게 씹혔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창 너머로 붉은 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바다로 나갔다.
몽돌해안에서
일출을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듯 밀려오는 햇살 앞에서
마음의 빛도 함께 밝아지고
한 겹 맑아졌다.
기운이
몸 안쪽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해가 올라오는 장면은 언제나
삶이 사람을 다듬는 방식과 닮아 있다.
부딪히며 깎인 모서리는 사라지고
마침내
무게만 남는다.
독일마을은
관광지라기보다
한 세대가 선택한 삶의 흔적에 가까웠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안식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풍경은 비로소
묵직한 얼굴을 드러냈다.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머물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들이 건너온
긴 세월과
버텨낸 시간의 무게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남해는
무언가를 더 갖게 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 곳이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숙제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