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의 용기에서 앤의 용기로

감사일기

by 여울

캔디의 용기에서 앤의 용기로

어제 ‘앤’과 연결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본 감사일기를
친구들과 나눴다.


명복이와 은실이의 진심 어린 축복과 응원을 받으며
마음 안으로 따뜻한 볕이 스며드는 걸 느꼈다.

오늘 아침 출근길,
문득 어젯밤 명복이의 문자가 떠올랐다.

“난 쪼금 울지도 몰라.”


내 글을 읽고 울지도 모른다는 그 말.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나는 울음이 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본다.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일들이 많았지만
나는 눈물을 자주 흘리던 아이는 아니었다.
빨간머리 앤은 슬플 때마다 울었는데,
나는 울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자랐다.


그 생각 끝에
어린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들장미 소녀 캔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며 달리던 소녀, 캔디.
밝고 씩씩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외로웠던 아이였다.


고아원에서 자라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웃음을 배웠고,
친구 애니가 입양되어 떠나도,
사랑하던 안소니가 세상을 떠나도
울지 않았다.

“괜찮아.”
그 말을 되뇌며
마음속 눈물을 삼키고 살았다.


그 미소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용기였지만,
동시에 상처를 숨기기 위한 방패이기도 했을 것이다.

출근 후,
앤과 캔디가 상처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정리해보니 이랬다.

앤은 ‘감정을 표현하며 회복’했고,
캔디는 ‘감정을 절제하며 생존’했다.

앤은 고통을 인식하고
언어로 풀어내며
자신의 내면을 통합해갔다.


반면 캔디는 고통을
활동과 헌신으로 덮으며
시간 속에서 조용히 소화해갔다.

어느 쪽이 더 옳거나
더 나쁜 것은 아니다.

표현은 회복의 힘이 되고,
억제는 때로 생존의 지혜가 된다.


앤의 눈물과
캔디의 미소는
각자의 시기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서로 다른 형태의 용기였다.


나는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앤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가 아니라
캔디처럼 감정을 다스리며 살아온 아이였다는 것을.


아마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
혹은 내 슬픔을 감당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일찍 알아버린
아이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용기는
울지 않는 데 있지 않다는 걸.


앤처럼
슬픔을 말하고,
외로움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이
삶을 품는 진짜 힘이라는 걸.


출근길 내내
캔디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캔디의 미소로 버텨온 지난날에 감사하고,
앤의 눈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울지 않는 용기’에서
‘울 줄 아는 용기’로
건너가는 중이다.

From the Courage of Candy
to the Courage of Anne.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오늘 내가 선택한 다섯 가지 실천


1. “괜찮아” 대신 “괜찮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기

2. 감정을 ‘참는 것’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옮기기

3. 상처를 피하지 않고 상처에 이름 붙이기

4. 누군가를 위로하듯 나 자신도 위로하기

5. 울음의 감각을 되찾기감정이 차오를 때 ‘울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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