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어린이여야 했던 나에게,

감사일기

by 여울

2025년 10월 12일 감사일기

착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다정한 어른이 되는 하루.


오늘 오래된 앨범을 꺼내
10대, 20대의 사진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자주 가던 장소, 함께 웃던 얼굴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해진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내 삶에 한때의 온기를 남겨준
‘젊은 날의 자원’이었다.


앨범을 몇 권 넘기고 나서야
찾고 있던 두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엄마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았던 초등학교 4학년 어버이날.
효녀상을 받고 강단 앞에서 글짓기를 낭독하던 나.
짧게 자른 바가지 머리, 작고 마른 체구.
그날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였다.


사진 속 어린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때부터 너는
‘착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왔구나.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자주 다그쳤을까.


돌이켜보면 그것은
엄마를 잃은 어린 내가
이 세상에 남기 위해 선택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심리학에서는 ‘과잉적응’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타인의 인정이 곧 나의 존재 이유가 되어
끝없이 노력하고 완벽을 향해 달리던 마음의 습관.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요즘 푹 빠져 보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머리 앤〉이
왜 그렇게 마음에 깊이 닿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앤 역시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고아가 되었지만,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을 믿었고,
이해받지 못해도 상상으로 세상을 물들였다.


그녀의 말과 눈빛은
마치 그 시절의 나에게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마 앤을 통해
‘그때의 나’를 위로받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던 아이를
앤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대신 안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를 지켜준 건
‘착함’만이 아니었다.
앤에게 매슈와 마릴라, 다이애나가 있었듯
나에게도 나를 품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처럼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언니,
말없이 나를 자랑스러워해주던 아버지,
부족함보다 가능성을 먼저 봐주던 선생님들,
그리고 끝까지 곁을 지켜준 친구들.


그들의 사랑 덕분에
나는 버티는 아이가 아니라
자라날 수 있었던 아이로 남았다.
그 사랑이 내 안의 뿌리가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이제는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괜찮다고.
누구의 착한 아이가 아니어도
너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효녀상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마음을 따뜻하게 품는 상’을
나 자신에게 주고 싶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는 상을.


앞으로의 나는
세상의 착한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착한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더덕향 가득한 점심상에서 느낀 마음

명절 선물로 들어온 산더덕의 껍질을 벗기자
향긋한 더덕 향이 주방 가득 퍼졌다.
고추장 더덕구이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참치액젓과 매실청으로 양념을 바꾸어 보았다.


마늘방망이로 더덕을 두드리자
예서가 “아랫집에서 민원 들어와요!”라며 웃는다.
조심스레 굽고, 한입 맛을 보더니
“정말 맛있다”는 말이 돌아온다.
그 한마디에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은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줄 때 완성된다.
요리는 내게
사랑을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언어다.


머리를 기르게 한 미용실 원장님

머리를 기르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지만
원장님만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해보고 싶으면 해봐요.
안 되면 그때 자르면 되잖아요.”


그 한마디의 지지 덕분에
내 머리카락은 자랐고,
그만큼 내 마음의 인내도 자랐다.
지지받는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오늘 다시 배웠다.


오늘의 감사

착한 아이로 살아온 시간,
그 아이를 안아준 이야기와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나를 지지해주는 손길들.


이 모든 덕분에
오늘의 나는
조금 더 나에게 다정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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