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아트(Ma’at)를 알고 살아가는 삶

by 여울

나는 완벽한 균형의 사람이 아니다.

다만, 매 순간 나의 심장이

무엇에 기울고 있는지는

외면하지 않으려 애써 왔다.

그것이 내가 지닌 마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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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트(Ma’at)’.

오래전 배철현 교수님의 ‘위대한 질문’ 수업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던 단어다.

마아트는 고대 이집트에서 세계와 인간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질서이자, 매 순간의 선택 속에서 진실과 균형을 살아내도록 이끄는 삶의 기준이었다. 진실과 정의, 균형과 질서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상태.

인간은 그 질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살아왔는지로 평가받았다. 죽은 자의 심장이 깃털과 함께 저울에 올려졌다는 이야기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심판이라기보다 삶 전체의 균형을 묻는 은유에 가깝다.


처음에는 신화처럼 멀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이야기를 내 삶의 언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저울은 특별한 날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매일의 하루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삶의 모습이라기보다, 매 순간 흔들리면서도 중심 안에 두고 놓치지 않으려 했던 삶의 태도. 그 축 위에서 나는 나 자신의 마아트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살아 움직이는 ‘균형’

돌아보면 내 삶은 늘 선택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일과 삶, 감성과 이성, 성과와 과정처럼 서로 다른 힘들이 동시에 나를 끌어당기는 자리에서,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기보다 그 사이의 긴장을 견디는 쪽을 선택해 왔다. 빠르게 결정하면 편해질 순간에도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서두르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박자 더 기다렸다. 균형은 멈춰 서 있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과는 종종 늦게 나타났고, 관계에서는 불편해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혼자인 듯한 시간을 지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나를 약하게 만들기보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이것이 내가 삶 속에서 체득해 온 첫 번째 마아트다.


‘정직’이라는 중심축

내 마아트의 한가운데에는 정직함이 놓여 있다. 나는 나를 속인 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다. 편해 보이는 길보다 옳다고 믿는 길을 붙잡으려 애써 왔고, 관계에서도 모호함보다 솔직함을 택해 왔다. 이 정직함은 삶을 가볍게 해주지는 않았지만, 대신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지금의 선택이 훗날의 나에게 어떤 얼굴로 남을지를 끝까지 묻는 습관은, 내가 나 자신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지키며 살아오게 했다.


자유를 지탱하는 ‘책임’

또 다른 축에는 책임이 있다. 나는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았다.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정확히 가늠하려 애써 왔고, 그 경계는 나를 묶는 울타리가 아니라 안정된 삶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내 선택에는 늘 여운이 남는다. 쉽지 않았다는 흔적처럼 남는 그 여운이야말로, 내 삶이 충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결정의 연속이었음을 말해준다고 믿는다.


‘연민’,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

그리고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마아트는 연민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사람마다 다른 속도가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이해가 된다는 것도 배워가고 있다. 이 연민은 약함이 아니라, 세상을 단순하게 재단하지 않겠다는 선택이며,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게 하는 삶의 중심이다.


‘진심’, 시간이 걸릴 뿐 사라지지 않는 것

삶의 저울 위에 나는 ‘진심’을 더한다. 내가 마음을 쓰는 곳에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결실이 맺힌다는 믿음, 진심은 돌아가지 않고 시간이 걸릴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 이 믿음은 내 삶의 태도가 되었다. 그래서 결실이 더딜 때는 마음을 의심하기보다 방식과 방향을 돌아보려 한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되, 결과를 다그치지 않고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리듬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


마아트를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완벽해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다만 매 순간 내 심장이 무엇에 기울고 있는지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흔들리되 중심을 잃지 않고,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으며, 나에게 정직한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나의 마아트이고, 앞으로도 내가 붙들고 살아가고 싶은 삶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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