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아티스트일 뿐이다
_바스키아 앞에서, 마음 둘 곳을 잃는 순간들
장 미셸 바스키아 전시는
1월 31일에 끝난다.
흘려 보낼 수가 없어
문 열 때를 기다려
DDP에서 바스키아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그림을 ‘보았다’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장 미셸 바스키아는 태어났다.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흑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늘 경계에 가까운 자리에서 자랐다.
여덟 살 무렵 큰 교통사고로 장기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때 어머니가 건네준 해부학 책 Gray’s Anatomy는
이후 그의 그림 속에 반복되는
뼈, 해골, 신체의 출발점이 된다.
몸은 그에게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와 상처, 폭력이 새겨진 장소였다.
그는 거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스무 살 무렵, 너무 빠르게
미술계의 중심으로 불려 들어간다.
천재라는 이름과 함께
‘흑인 아티스트’라는 별칭도 따라붙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나는 단지 아티스트일 뿐이다.”
이 말을 알고 전시를 보니
그의 그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쁨, 1984〉 앞에서
나는 오래 멈췄다.
기쁨이라는 제목인데
중심에 있는 인물은 웃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인물들은 웃고 있다.
그 웃음은 이상하게 따뜻하지 않았다.
축하라기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처럼 느껴졌다.
성공한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그 성공이
곧 환대와 안정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가 서 있는 자리와
그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간격이
그대로 내게로 왔다.
나도 삶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 있을 때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분명 함께 있는데
내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때.
웃지 않으면 어색해지고,
웃으면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은 순간.
그럴 때 마음은
관계 밖으로 밀려나는 게 아니라
안쪽으로 접혀 들어간다.
〈무제, 눈 1984〉 앞에서는
뭉개진 얼굴과
하얗게 남은 눈이
지상에 없는 우주인처럼 보였다.
사람의 얼굴인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
보는 눈이라기보다
계속 보여지는 눈 같았다.
바스키아는
글자를 쓰고, 다시 덮고, 지운다.
가려진 단어들 사이에서
시선은 오히려 더 오래 머문다.
무엇을 썼는지,
왜 지웠는지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 얼굴 앞에서
나는 그가 외롭다기보다
부유(浮遊)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는 상태.
〈Farina, 1984〉에서는
그 부유의 이유가 또렷해졌다.
웃고 친절한 흑인 캐릭터로
소비되던 이미지가
바스키아의 손에서 완전히 뒤집힌다.
신발 위에 적힌
REPAIRS, REBUILDING.
고쳐야 할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온 세계라는 선언.
이 그림에 등장하는 단어와 기호들은
어렵게 해석해야 할 암호가 아니라
일상에서 이미 보아왔던 것들이다.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그림을 보다가
눈물이 맺혔다.
알고 나서 우는 눈물이었다.
그 얼굴들이
더 이상 상징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스키아는
중세 제단화의 형식까지 가져와
자기 그림에 사용한다.
신성한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말하는 것 같다.
내 그림은 중요하고,
내 이야기는 신성하다고.
그러나 그의 삶은
그 신성함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집이 있었던 시간,
그 시간 속에 앤디 워홀이 곁에 있었다.
워홀은 구원자가 아니라
항상 깨어 있지 않아도 되는 공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역할을 내려놓아도 되는 자리에 가까웠다.
워홀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그에게 허락되었던
안정된 시간과 마음속 쉼의 집은 사라졌다.
바스키아는 다시
과잉의 시선 속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원했고
곧 그의 시간을 원했고
나중에는
그가 아직 그리지 않은 그림까지 원했다.
하루 17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약 8년 동안
4천 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자유와 저항을 그렸지만
정작 그의 삶은
자유와 가장 멀어졌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끝내 그를 무너뜨린 것이기도 했다.
1988년,
바스키아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와서
나는 바스키아를
영웅으로도,
비극으로도 정리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해진 건 이것이다.
그는 끝까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
이름으로 소비되기보다
한 인간으로 남고 싶어 했다는 것.
그래서 그의 말이
지금 내 삶에도 걸린다.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가.
그 이름 안에
나는 아직 남아 있는가.
이 전시는
바스키아를 이해하는 전시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전시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자꾸 멈췄다.
마음을 둘 곳을 잃었던 순간들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기쁨 1984
무제 eye 1984
Farina,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