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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Jul 10. 2019

두물머리에서

검은색 고니와 구름 낀 하늘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꾸무룩한 날씨.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있지만 간혹 그 사이로 강한 햇빛이 내리쬐어 덥고도 시원한 공기.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로 멋을 낸 중년 여성들과 등산 바지에 지팡이, 형형색색 조끼를 입은 중년남성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고 김치! 치즈!


바위에 손을 얹고 한쪽 다리를 살포시 굽힌 채 수줍게 웃는 이, 금방이라도 바위 뒤로 숨을 듯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이, 강변을 바라보며 짐짓 공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 틈으로 보이는 너른 강물.


잔잔하게 흐르는 수면 위로 낮게 비행하는 검은색 고니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또 다시 하늘엔 잔뜩 낀 구름과 간간히 비치는 강한 햇볕.


먼 길에도 얼음이 녹지 않은 텀블러 속 커피와 집 근처 가게에서 포장 해 온 김밥 한 줄을 우걱우걱 먹으며 나는 여기에 사람을 보러 왔던가 풍경을 보러 왔던가...정작 핸드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그래도 바람에서 묻어나는 물 비린내를 맡았으니 나는 양수리에 온 것이라고 강가에서 쉬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하는 오늘.


- 문득 지겹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날, 덜 지겹기 위해 나온 두물머리에서.



일을 하며 아무 것도 틀어놓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음악이나 라디오, 동영상 같은 것들을 틀어놓지 않으면 그 적막함을 못 견뎌하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해야 할 목록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기 시작하며 마음 속이 소란해진 덕에 들려오는 소리들이 대체로 시끄럽게 느껴져서이다.

언젠가부터 마음 속의 소란은 어디든 날 따라다녀서 둘러 둘러 다니는 동네 마실길에서조차 머릿 속을 복잡하게 흐트러 놓았다.


그래서, 두물머리에 나왔다.

마음 속 소란을 잠재워 볼 요량이었는데 하필 마주앉은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사진을 찍겠다 돈을 나누겠다 쉴 틈 없이 꽥꽥 거리는 통에 정신만 더 사나워졌다. 아이고, 이렇게 심보가 고약해지는 것보단 마음 속이 복잡한 것이 더 낫겠다. 아아 이것은 역설의 역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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