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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Aug 10. 2017

잘 채우려면 잘 비워내야 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길게 쓰는 것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덜 이내며 간단명료하게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도 비슷하다고 체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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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취향대로 옷을 맞춰 입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지금이라고 엄청 잘 입는 것도 아니지만 예전에는 훨씬 구렸음을 기억한다. 커다란 방울이 달린 비니에, 말도 안 되는 색감의 패딩, 복잡 다양한 패턴이 배열된 하이탑 스니커즈를 동시에 매치하다니. 지져스.. 

그 후 몇 년의 시간 동안 패션잡지나 길거리 패션들을 살펴보며 느낀 점은, 잘 입는 사람들은 오히려 잘 덜어낸, 정제된 착장에서 자신만의 느낌 있는 감각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걸쳐 입은 모든 것이 포인트가 되는 룩은, 포인트가 전혀 없는 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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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이 트리플 에이형인 관계로, 열등감은 기본 옵션으로 내장되어 있었고, 누군가보다 모든 방면에서 나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며 요것도 잘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나 스스로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었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잡종 하이브리드 괴수의 모습이 된 나를 보며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를 품게 만든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간과했던 간단한 기술은 "덜어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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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게임에서도 모든 능력치가 다 좋은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피드가 좋던, 순발력이 좋던, 지구력이 좋던 어느한두곳에 능력치가 쏠리기 마련이다.

비현실 그 자체인 게임에서 마저도 그러한데, 현실의 나는 어떨까를 생각하면 답은 참 간단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고, 그나마 잘한다고 생각하는 점도 누군가보다 부족할 수 있기에 좀 더 내 스타일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꽤 오래 시간이 걸렸음은 지금도 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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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언가를 "하면서" 나라는 존재의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가치로서 매우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잘 못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억지로 붙들게 될 때,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느끼게 된다. 

이는 쎈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쎈놈이라는 김범수 님의 띵언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이므로, 지양함이 옳다.

결국 내가 잘하는 그 한두 가지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할 필요가 없거나 흥미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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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하는 것을 채워 넣으려면, 먼저 비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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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안목이 필요하며,

이는 "좋은 경험"과 "훌륭한 스승"이 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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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wild_official#go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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