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들의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끔찍한 범죄 이야기가 넘쳐 나고, 탐정이 합법이 되어 사생활의 뒤를 캐준다. 경제, 사회가 엉망진창인데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이권 다툼하느라 민생은 뒷전이고, 약자의 잘못을 캐내어 돈을 버는 유튜버들까지 판을 친다. 거짓은 사실이 되고, 사실은 또 거짓으로 치부된다. 대담한 거짓말일수록 사람들은 더 잘 믿는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불신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뿐인가? 부모가 아이를 버리거나 학대해서 죽이고, 자식도 부모를 죽인다. 제대로 된 가정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결혼도 아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나는 그런 시대에서 살고 있는 모태 솔로 이름하여 한녀(대한민국에 사는 여자)다. 물론, 내 앞에서 대놓고 한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나 같은 여자를 한녀라고 한다니 대다수 그렇게 생각하겠지. 누가 이런 프레임을 만들어 놓은 건지는 모른다. 신조어처럼 매일 같이 쏟아지는 인간 비하의 단어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가는 보잘것없는 내 신상 탈탈 털리는 것쯤이야 수분이면 족할 터. 불의를 보고도 참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타인을 비하하고 비꼬지 않으면 안 되는 병에라도 걸린 것 같다. 기사 하나가 뜨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하이애나들. 배고픈 본능밖에 남아 있지 않은 짐승과 다를 게 뭘까?
내가 아직 한녀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거나 나를 좋아하는 남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고, 결혼은 하고 싶으나, 남자가 없으니 못하는 것뿐이다. 난 늘 사랑에 빠지고 싶고, 예쁜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살고 싶다.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 현실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기준? 높지 않다.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 친구 중에 데이트 폭력으로 심각한 상처를 받은 이도 있고, 일찍 결혼했다가 덜컥 이혼한 친구도 있다. 그냥 평범한 남자. 그런데 그 평범한 남자 찾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다. 남자의 조건이 좋으면 나에게 바라는 것도 많아진다. 언젠가 엄마 친구 아들이 나의 존재를 알고 연봉이 얼마냐는 질문을 제일 먼저 했다는 소리에 그 날밤 혼자 깡맥주를 몇 캔을 땄나 모른다.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연봉으로 나를 판단한다고? ‘에라이, 못난 놈아!’ 혼자 욕을 얼마나 했는지 다음 날 목이 쉬어서 하루 종일 묵언수행을 해야만 했다. 나는 나를 아주 잘 안다. 예쁘지도 않고 눈에 튈 만큼의 매력도 없다. 아주 평범한 지나가는 직장인 1이다. 취집(취업 시집)을 할 수 없는 조건임을 누구보다 알기에 평범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면 족하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내 조건에 맞아 한 번 만나라도 볼까 싶으면 그의 조건에 내가 안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야말로 서류심사에서 탈락. 면접으로 만회할 수 있는데도 내 차례는 오지 않는다.
다른 면에서 말하자면, 나는 꽤 신중한 성격이다. 실패가 두려워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나에게도 몇 번의 기회는 있었다. 그런데, 오는 손을 내가 밀어내 버렸다. 나에게 과분한 거 같아서, 나중에 나에게 실망할까 봐. 그렇게 시작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연애를 미리 걱정하느라 다가오는 또 다른 기회들조차 쫓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도 그만 고르고 대충 가라는 식의 직언을 서슴지 않고 날린다. 대부분 오십 대 꼰대 아재들이다. 그중에 내 결혼에 제일 관심 많은 아재는 옆 부서의 박 부장이다. 그는 갓 들어온 신입과 목하 열애 중이다. 그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어허 이걸 어쩌나. 모두가 아는 공개 불륜이다. 그런 주제에 결혼 예찬을 하는 그의 입에 어퍼컷 한 방 날리고 싶지만 참아야지. 대리 주제에 감히 부장을. 나같이 정상적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는 이상한 세상. 젠장 할 노릇이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도 혼자 살고 있는 싱글, 내 이름은 서 지은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착해빠져서 세상을 어떻게 사냐고들 한다. 그럼 나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그에 대응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곰같이 구니까 남자가 안 붙는다는 둥 단군 할아버지도 웃고 갈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기 주변에 돌아온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제 그 나이면 그쪽도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소개해 줄 테니 한 번 만나보라는 주제넘은 참견도 한다. ‘내 남자는 내가 고를 거니까 신경들 끄시죠.’라는 말이 혀끝까지 밀고 나오지만,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참아 낸다. 다들 왜 이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을까? 이렇게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냉혹하다 못해 참담한 사연들로 넘쳐 난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어쨌든 나는 내가 평생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생물학적 엄마가 될 수 있는 나이가 끝나기 전에.
나는 일명 내 남자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나만 아는 프로젝트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비밀리에 임무를 마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외동딸이다. 평범한 부모님이 계시고, 두 분 다 건강하시다. 사랑이 넘치는 사이는 아니지만 데면데면 같이 살고 계시고,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사시는 중이다. 서울에 오래된 아파트 한 채. 나에게 물려줄 재산? 그런 건 없다. 배경은 그렇다 치고 이제 나를 살펴보자. 나는 서울의 이류대학을 나와서, 크지 않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한 지 10년 차 된 마케팅 부서 직장인이다. 인턴으로 시작해서 계약직의 위기를 한 차례 넘었고, 승진 줄다리기에서 다행히 밀려나지 않아 대리를 얼마 전에 달았다. 연봉은 6천. 서울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서울과 경기도 경계 어디에 풀 대출을 안고 20평대 아파트에 입주한 지 3개월에 접어들었다. 전세살이 설움에서 벗어나 내 집을 갖고 나니 사실 결혼 안 하고 이대로 혼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퇴근 후 맞닥뜨리는 어둠이 어느 순간부터 두려워졌고, 쓸데없이 큰 식탁을 사버려 혼자 맞는 밥상도 청승맞기 이를 데가 없었다. 강아지를 키워볼까도 생각했지만, 그 아이에게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어서 포기해 버렸다.
이렇게 자각이 분명하고, 눈도 낮은데 나는 왜 여태 모태 솔로를 못 벗어나고 있을까? 너무 집, 회사만 다녀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회사 안에는 내 남자가 없다. 10년을 봐왔지만, 동기부터 위아래 아무리 훑어도 평범한 사람이 없다. 다들 특이하다. 나 같은 사람은 오로지 성실함 하나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리는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무릇 평범한 삶이란 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을 썼다. 꽤 쓸모가 있는 가면이다. 내 에너지가 고갈되어 갈수록 사람들의 만족감은 올라간다. 언젠가, 책에서 HSP 성향의 사람들에 대해 다룬 내용을 봤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황 자체에 대한 회피형 패턴, 딱 나였다. 그렇게 응축된 스트레스는 운전대만 잡으면 예민해지며, 가끔 엄마에게 ‘좀 이쁘게 낳아주지’라고 어깃장을 부리다가 등짝을 맞기도 한다. 엔터 회사다 보니 연예인들도 가끔 본다. 그들은 아예 내 기준에서 탈락이다. 언감생심이다. 그렇다면, 동기들은 어떤가? 매일 데이팅 앱에서 어떤 여자를 만날까만 생각한다. 사회적 능력은 있을지 모르나 골 빈 놈들이다. 위로 가면 대부분 유부남이거나 다녀오신 분들이다. 아래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 게임에 미쳐있거나 인스타에 미쳐있다. 모두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뿐이다. 회사는 아웃. 밖에서 찾아봐야 하는데 이건 더 어렵다. 천성이 내향적인 데다가 집순이다. 인연을 만나려면 우연이라도 겹쳐야 하는데 그 우연을 만들 일이 없다. ‘자동차 접촉 사고라도 내봐?’ 몹쓸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시작되는 연인들이 있다카드라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분야에서조차도 일가견이 없다. 무사고 경력 15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