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지

認知

by 열정아줌마

영지는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영지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자기 일에 몰두했다. ‘역시, 안 되는 거구나.’ 나는 힘이 쭈욱 빠졌다. 어떻게 은거 중인 나의 죽음을 알릴 수 있을까? 살아있을 때는 꼭꼭 숨고 싶었는데 죽음은 알리고 싶다니. 병신도 이런 병신이 없다. 망연자실해서 영지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하는 걸 보고 있자니 역시나 똑 부러진다.

'그래, 그때 영지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는데, 지석이라는 아이는 거짓말쟁이라고. 믿지 말라고. 언니 잘못이 아니라고. 제발 정신 차리라고. 그랬는데…….'


영지의 핸드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영지는 늘 바쁘다. 아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전화를 받는 폼이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네, 진영지입니다. 어디십니까?”

“네, 수고 많으십니다. 혹시 진영숙 씨 동생되십니까?”

“네, 제 언니예요. 무슨 일이시죠?”

“직접 오셔서 확인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다 들린다. 허둥대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영지를 따라갔다. 영지가 도착한 곳은 어느 병원의 영안실이었다. 입구에서 아는 사람인 듯 과학수사 조끼를 입은 사람과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영지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


내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사이에.


“찾던 언니분 맞으시죠?”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어?”

“이런 표현이 맞나 모르겠는데, 마침 언니분 옆집에 과수 직원이 살았나 봐요. 왜, 우리만 아는 냄새 있잖아요. 그걸 감지하셨나 봐요. 혹시나 싶어서 문을 당겼는데 안 잠겨있었대요. 곧바로 지구대에 연락해서……. 그 뒤는 말씀 안 드려도 아실 거고. 검시관 말로는 5일 정도 된 것 같대요.”


‘5일이나…… 지났다고?’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새 5일의 시간이 지났고 내 몸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냄새에 민감했던 내가 냄새로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알렸다. 어찌 되었든 내가 죽었음을 영지가 알게 되었다.

“부검하실 거예요?”

영지는 넋 나간 사람처럼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잠시 후, 발견당시 사진 몇 장을 보더니 부검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그 역시도 관할 경찰서에서 결정할 문제겠지만 수면제에 의한 자살임이 밝혀지면 굳이 부검까지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트가 맞는 속옷을 입고 있다. 그걸로 족했을 것이다.

“담당 수사관님께 말씀은 드려죠. 타살은 아닐 거라고. 의심점이 있으면 다시 얘기해 달라고. 아마도 없을 거야. 아마도.”

“그래도 출입 기록이라든지, 기본적인 수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잖아. 하던 대로 하면 돼.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생각했었어. 현실이 됐을 뿐이고.”

영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나 죽기 기다렸나 보네.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영지는 긴 숨을 토해내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몸 안에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쏟아내었다. 눈으로 코로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다, 욕도 했다. 그러다 미안하다고 하다가 또 욕을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영지는 날 찾았다. 목이 쉬어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흘리지 못했다.

서너 시간 지났을까? 병원 앞에 지수와 지호, 그리고 남편이 도착했다. 그립고 그리운 얼굴들. 쓰다듬고 쓰다듬었던 그 얼굴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내 곧 울음으로 나에 대한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보이나?’

존재는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죽으면 끝나야 하잖아? 왜 죽었는데, 괴롭고 싶지 않아서 죽었는데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 거냐고요?”

‘그게 인간들이 쉽게 하는 생각이지.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될 거라고. 어리석게도 말이야. 인간은 말이지. 자기가 한 만큼의 삶을 한 번 더 살아야 해. 끝은 없어, 돌고 돌뿐이지.’

“저는 불교 아니에요. 무교라고요.”

‘종교와 관계없어. 그건 어느 신의 세계에서든 공통이지. 가는 곳만 달라질 뿐이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 울고 있는 내 가족들. 내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저렇게 아파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멀리서 영지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빈소는 그렇게 해요. 형부. 그래도 잘 보내야 하니까.”

“처제 미안해. 마지막까지 내가 면목이 없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3층 특실로 잡을게요. 부고는 어떻게 할까요?”

“아무도 부르고 싶지 않아. 처제. 우리끼리 보내면 안 될까?”

“저도 그래요. 아무도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해요. 우리끼리.”

지수와 지호는 아직 믿기지 않는지 멍하니 빈소의 빈자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301호 특실. 장례식장에서 가장 넓고 비싼 곳. 그 휑한 곳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겨져 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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