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쉰다섯 살에 로맨스 글을 쓰다.

by 갑수림

큰 아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어릴 적 엄마 껌 딱지였던 아들이.

중학교 때 처음, 동생을 보라고 집에 떼어놓고

부부 둘만의 데이트 겸 마트를 다녀올 정도로, 분리 불안이 심했던 큰 아들이었다.

어릴 때, 어린이집을 보내는 아침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들 때문에

눈물로 전쟁을 치르고, 학교와 학원 이외에 엄마가 집에 머무는 시간에는

항상, 당연하게 옆에 붙어 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은 커서 군대 생활을 의젓하게 해내고

코로나 시대에는 아무도 없는 적막한 대학 캠퍼스 안 연구실에서

일 년을 오롯이 외롭게 버텨낸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대학교 4학년이 되고,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취업이라는 큰 명분을 가슴에 안고 좋아하는 집을 떠났다.

일 년이라는 인턴도 안된다고, 못 보낸다고 반대하던 남편과는 다르게

삼 년 계약직도 담담하게 받아들인 나였다.

마음은 삼 년 동안 금쪽같은 아들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현실 앞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과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아들의 장래를 위해 엄마는 응원의 말만 보태야 했다.

넓은 세상에서 많이 보고, 여행도 실컷 하고 오라고.

눈에는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나의 보물을 그렇게 큰 세상으로 보냈다.

군대도 갔다 오고, 대학 4년을 마친 다 큰 아들에게

남들이 보면, 유난을 떤다고 하겠지만

집에 있는 시간 동안, 아니 엄마와 한 공간에 있는 집을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었기에

우리 부부의 마음은 항상, 어릴 때 그 아들의 모습으로 마음속에 있었다.

아들이 미국으로 가고 눈물바람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며칠 뒤, 어느 날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사진첩을 펼쳐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릴 적 아들의 모습과 함께, 아들 옆에는 항상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푸르게 젊은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아들을 품에 안거나, 손을 꼭 잡고 활짝 웃으며

때로는 옷 색깔을 맞춰 입고, 어린 아들과 싱그러운 나의 청춘도 거기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엄마 곁을 떠나면 큰일 날 것 같은 아들은 성인이 되어서

제 인생을 위해서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엄마인 나만, 그 자리에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어릴 적 귀엽고 볼이 통통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나의 예쁜 얼굴도 쓰다듬었다.

두 아들을 키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곱고 날씬했던 외모는 주름이 만들어지고

푸짐한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예전에 이렇게 예쁘고 날씬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아까웠다, 내 청춘이.

자식을 위해, 남편을 위해, 가족을 위해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중년의 아줌마가

거울 속에서 낮 설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두 두둑 떨어졌다.

내 젊은 청춘이 아깝고, 안쓰럽고 나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나의 꿈 많은 청춘시절로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육체는 이미 예전에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육체와 꼭 비례하지 않고 사춘기 아이처럼 반항심이 일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한 감성들이 아직은 내 안에 남아 있을 때.

오랜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듯 내 감성이 메마르기 전에

뭐 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연필을 들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끄적거렸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은 연필을 한 다스 사서 깎아 주면서 응원을 했다.

볼펜도 있고 워드로 치면 될 것을, 왜 하필 연필로 쓰냐고 하길래

글을 쓸 때마다 삭삭 소리를 내며 연필이 종이에 닿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볼펜이나, 워드로 치면 감성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들을 보내고 우울증에 걸릴까 봐 걱정하던 차에

뭔가 하려는 나를 응원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글 쓰는 걸 열심히 할 줄 몰랐다.

즐거웠고, 신이 났다.

자다 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서 식탁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어느 날 연필자국이 움푹 들어간 손가락이 아프고

떠오른 글을 연필이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아들 대학 입학선물로 사준 구형 노트북을 펼쳤다.

그렇게 또 한참을 신나게 쓰다가 생각을 했다.

이왕 워드로 쓰는 거, 인터넷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의견으로 어릴 적 아명을 작가명으로 결정하고

일주일에 3회씩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글을 써서 올리면서도 나는 몰랐다.

내가 연재 작가가 되어있다는 걸.

댓글을 보면서 더 신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 줄 모르고 살았는데

쉰다섯 살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뭘 하면 행복한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웹 소설 작가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