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특별한 희생, 정치의 실무적 책임

by 김의겸

1. ‘특별한 희생’에 따르는 ‘특별한 보상’

지난 현충일, 대통령은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에게 국가가 유무형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당연한 원칙인 동시에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우리 국민은 보훈 이슈에 그 어느 국민보다도 민감하고, 보훈을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입법과 보훈 실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오며, 이제는 이 ‘특별한 보상’이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에 내용을 정리했다.


2.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예우

현재 대한민국 국가보훈부의 1년 예산은 약 6조 원으로, 국가 전체 예산의 1% 수준이다. 과거 보훈처 시절에 비해서는 규모가 커졌으나, 전체 예산의 4~5%(한화 약 300~400조 원)를 보훈에 쏟아붓는 미국과 비교하면 절대 큰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 특히 불과 70년 전에 한반도가 절반으로 갈라져 국제군이 참전했던 6.25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 직전에는 30년 넘게 일제로부터 탄압받으며 맞서 싸워온 역사가 있는 국가인데도 보훈 예산이 유독 적어보인다.

국민이 보훈의 현실에 분노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친일 후손은 땅과 돈을 물려받아 잘사는데, 독립과 참전의 유족과 후손은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역설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친일파를 때려잡자는 감정적인 청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결국 유공자와 유족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예산의 확보가 핵심이다. 당장 세금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면, 기업과 민간의 후원을 체계적으로 독려하고 국가 예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상향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보훈은 기억의 영역인 동시에 철저히 예산과 정책의 영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 민주유공자, 보훈 체계의 마지막 퍼즐

우리의 보훈 체계는 주로 전쟁과 군 복무 중의 희생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인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예우는 여전히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국가유공자법의 4·19유공자와 5·18특별법의 5·18 민주유공자를 제외한 수많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을 위한 ‘민주유공자법’은 오랜 시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 당시, 유족들이 경제적인 보상 문구를 전부 포기하고 오직 떠나간 자식들의 ‘명예’만을 요구하며 추진했던 민주유공자법 제정안조차 부처와 의원들의 거센 반대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참담했다.

2024년 12월 3일,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에서 헌정 위기의 순간에 국민이 보여준 민주주의 수호 의지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희생이 토양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난 민주화운동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정신과 의지가 이어져 온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는 아직 국가의 시스템에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유공자법을 비롯해서 5.18민주유공자법 등 민주화운동 관련 법안을 다룰때마다 빨갱이, 종북좌파 소리를 들었다. 실제 유족과 희생자들은 훨씬 더 무거운 공격을 받아왔으리라. 그럼에도 그 뿌리가 된 이들을 여전히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는 현실은 지독하다.


4. 이념 갈등의 해법, 보훈의 통합에 있다

민주유공자를 국가보훈 체계 안으로 포용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희생을 기리는 일을 넘어, 현재 우리 사회를 좀먹는 이념 전쟁을 끝낼 실마리이기도 하다.

극우 보수 집회에 등장하는 태극기와 유공자 단체의 모습에서 기묘한 단절을 목격했다. 국가로부터 전쟁의 공로는 인정받았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는 공유하지 못한 이들이 태극기를 독점하며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형국이다. 전쟁 유공과 민주 유공이 국가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나란히 예우받아야, 비로소 ‘국가를 지키는 자부심’은 이념을 넘어 통합될 수 있다. 서로를 ‘종북’과 ‘독재’로 갈라치기 하는 이념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민주유공자의 제도적 수용은 필수적이다.


5. 결론: 정치는 이제 실질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보훈은 단순히 훈장을 수여하고 기념사를 읊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보훈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국가에선, 누구도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말뿐이 아닌 실행으로 이어가야 한다. 그 희생이 실질적인 삶의 자부심으로 치환될 수 있도록 예산 구조를 재편하고 입법적 공백을 메우는 실무적 고민에 착수해야 한다. 보훈에 대해서만큼은 진영 논리를 떠나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운다는 책임감으로 실천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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