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입법 보좌관이 될 수 있을까
“지자체가 LED 가로등을 설치할 때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이루려고 하는데, 관련 법제들과 개정안을 예시로 만들어줘.”
최근 국회와 지방의회에서는 이미 AI를 입법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실제로는 입법과 관련된 자료 조사, 기존 법체계 분석, 개정 방향 검토 등에서 AI가 빠른 속도로 도움을 주고 있다. 뉴스·논문·통계자료를 일일이 수집·정리하면 며칠이 걸릴 일을, AI는 몇 분 안에 정리해준다.
물론 국회와 정당, 지방의회에는 입법을 전담하는 수많은 인력이 있다. 국회의 입법보좌진, 입법조사처와 법제실, 각 정당의 정책위원회, 지방의회의 정책지원관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지만, 그만큼 요청된 일이 많아 자료를 받는 데 일주일, 길게는 두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입법을 추진해야 할 때, AI의 빠른 정리 능력은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AI가 말아주는 입법,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게임 ‘스타크래프트’에는 프로토스 종족의 하이템플러가 쓰는 기술,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 있다. 실제와 똑같아 보이지만 가짜 유닛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AI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바로 팩트처럼 보이는 거짓 정보를 꾸며내는 오류, 할루시네이션이다.
필자 역시 AI 활용법 책을 집필하며 이런 문제를 겪은 적이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대학교 교수의 이름을 AI가 제시했지만, 정작 인용된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 자료였다. 잘못된 자료라는 것을 찾아내고 고치는 데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입법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존재하지 않는 법을 근거로 제시한다든가, 조작된 통계를 바탕으로 조항을 만든다면 국민에게 큰 혼란과 피해를 줄 수 있다. 조사 하나, 표현 하나가 달라져도 국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입법 영역에서, AI의 할루시네이션은 간과하기 어려운 리스크다.
AI는 기본적으로 컴퓨팅 기반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요청하면 개정안 예시부터 관련 통계·연구·여론조사까지 정리해주고, 입법 시행 시 장단점까지 깔끔하게 나열한다. 그러나 그 보고서를 그대로 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너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입법은 단순히 통계와 연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개되지 않는 보안 자료, 이해관계자의 반발, 각종 로비, 실무진 간 조정 과정 등 ‘불합리하지만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이 얽혀 있다. AI는 공개된 자료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맥락을 담아내지 못한다.
입법은 합리성만으로 추진되지 않는다. 사회 역시 합리적으로만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치에 맞고 합리적인 일들만 발생한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의 사건사고들이 그렇지 못하다. 당연히 우리 사회를 담고 있는 법도 그럴 수 없다. 합리적인 AI만으로는 실제 입법 과정을 전담하기 어렵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법률 사무를 처리해 이익을 취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AI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질 수 없으므로, AI가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내는 것은 현행법상 위법 소지가 크다. 실제로 일부 로펌이 AI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입법은 사법과 다르다. 국회, 지방의회 등에서 입법안을 마련하거나 보고서를 정리하는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법제처는 AI 기반 지능형 법령검색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저작권과 개인정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공개된 자료라고 해도 활용이 제한된 학술자료가 많다. 이를 AI가 무단으로 가져와 제공한다면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개인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입법부는 법을 만드는 기관인 만큼, 입법을 위해 누구의 도움을 받든, 어떤 자료를 활용하든 제약이 거의 없다. 국민의 삶을 위해 좋은 기술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 그러나 AI가 입법을 전담하기에는 아직 제약이 많고, 예상치 못한 문제도 존재한다.
빠르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합리적이라고 해서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입법은 단순한 문구 작성이 아니라, 현실과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AI여 일자리를 빼앗지 말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