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상은 강해서 강해상인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재미없엉.
<범죄도시>가 개봉한 지 5년이 지났다. 마동석은 언제나 무서운 사람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연기한 최익현의 매제 역할 정도가 예외였을까 항상 나쁜 놈이거나 착한 놈이거나 하여튼 무서운 인물을 연기해왔다. (베테랑의 카메오는 빼자.) <범죄도시> 역시 그런 유의 형사 역할을 맡은 마동석이 나쁜 놈을 때려잡는 영화였다. 흥행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700만 가까운 사람들이 극장을 찾으며 그 해 흥행 순위 3위라는 놀라운 상업적 성과를 올리게 된다. (참고로 1위는 대략 1200만 관객이 본 <택시 운전사>이고 2위는 약 780만 명이 본 <공조>였다.) 나도 꽤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이야기를 소개한다면 뻔하지 않을 게 없다. 괴물 형사 마석도가 나쁜 놈 장첸이를 추적해서 잡아가지고 졸라 패 버린다. 으아 속 시원하다! 하는 얘기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재밌었던 건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마석도는 졸라 짱짱 센 괴물 형사이면서도 유머가 있는 정의파 형사다. 그러면서 단란주점 사장의 접대에 마지못한 척 놀다가 봉변도 당하는 한심한 면도 있다. 장첸은 하얼빈에서 온 앞 뒤 가리지 않는 막장이다. 관객이 일말의 연민도 가질 수 없는 징글징글한 악인인데,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에게도 아주 잔혹하게 굴고 돈 빌려간 사람에게는 그가 누구든 뭐하는 사람이든 상관이 없다. ("돈 받으러 왔는데 뭐 그런 거까지 알아야 되니?") 돈을 받는다. 못 받을 거 같으면 장기라도 꺼내서 팔아 돈을 만든다. 그게 전부다. 이런 악랄함이 꼭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보인다. 그러니 관객들은 당연히! 당연히 마석도가 장첸을 곤죽이 되도록 때려줄 걸 영화 시작도 전부터 알고 있지만, 뒤로 갈수록 저 새끼를 빨리 잡아서 패버리는 장면을 보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장면에 도착했을 때의 속 시원함! 그것이 이 <범죄도시>라는 영화의 '재미'가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마동석 특유의 능글맞은 개그 씬들도 한몫을 했다. 장이수(박지환)와 황 사장(조재윤)의 감초연기도 약간 지루할 수 있는 중간과정을 재미있게 채워주었다.
<범죄도시 2>는 1편에서 '형사물'이라는 장르에 나름대로 충실하려 했던 태도를 버렸다.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이젠 작정하고 마석도의 원맨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한국 형사 히어로물로 정의를 하고 제작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 영화엔 일단 '조력자'의 비중에 매우 낮다. 있긴 있다. 중간에 강해성의 정보를 전달하는 베트남 유흥업소 사장, 라꾸, 까불이 등등이 있긴 하다. 죽은 줄 알았던 장이수도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기능적으로 소비되거나 1편을 활용한 농담을 위해 이용된다. 캐릭터고 뭐고 필요 없다. 그냥 할 일을 하고 퇴장한다. 영화는 마석도와 강해성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별게 없다. 마석도는 1편의 마석도를 그대로 가져다 놨다. 시리즈물이니 캐릭터를 다시 구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농담까지 1편과 똑같으면 지루할 수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의 농담들이 1편에서 나왔던 것을 되풀이하는데, 특히 영화 초반 형사들이 모여서 낄낄거리는 개그 씬은 90년대 한국 코미디의 콩트(정말 촬영 구도까지 그렇게 보였다)를 보는 것 같아서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 뭐지?라는 당혹감. 이건 개그콘서트도 아니고 더 시간을 거슬러가서 쇼! 비디오 쟈키 정도는 가야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이후로도 대부분의 조크들이 1편에서 유효하게 먹힌 것들을 다시 가져오고 있는데 한 두 번이야 낄낄할 수 있지만 계속 그래 버리면 재미없다.
영화의 빌런인 강해상은 미친놈이다. 사람 죽이는 건 아무 일도 아니고 사체 훼손, 매장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놈인데, 8명을 죽일 때까지 소재는 물론 이 놈이 한 짓인지 조차 아무도 모르는 아주 무시무시한 놈이다. 그러면 잔혹함에 더불어 머리도 잘 돌아가는 놈으로 생각이 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면 이 놈은 그냥 등신이다. 재벌급의 인물이 본인을 타겟팅하고 있고, 경찰까지 자신을 찾고 있는데 그냥 혼자 한국으로 밀입국을 한다. 무슨 초능력 빌런도 아니고 이러고 와서 안 잡힐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아주 대책 없는 나쁜 놈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냥 이건 머리가 아주 나쁜 놈이나 할 행동 아닌가?
영화 내내 사람을 죽이거나 협박을 하거나 하는 장면만 나와서 이 캐릭터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계속해서 얘 좀 보세요 아주 나쁜 놈이에요! 만 외치고 있는데 그래 나쁜 건 알겠어, 그러니까 납치하고 죽이고 막 팔 자르고 이런 거만 보여주지 말고 좀 '강해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강해상은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개념처럼 보인다. '악당'이라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그는 마석도가 아무리 뚜들겨 패도 속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강해상의 마지막 대사는 1편을 의식하고 썼는지 장첸의 마지막 대사와 비슷한 말을 뱉는데, 아. 진짜 좀 1편을 지나치게 갖다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거까지....
장르 영화는 먹히는 것으로 공인된 재료들을 맛있게 요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 요리에는 리듬, 타이밍, 대사, 캐릭터 등 다양한 것들이 조미료로 들어갈 것이다. 1편이 이런 부분에서 감칠맛을 잘 살린 것이었다면, 2편은 1편에서 쓰고 남은 조미료들을 막 집어넣고 새로운 조미료는 밸런스를 잡지 못해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맛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종류가 된 느낌이다. 친구가 요리를 해줬는데 한 입 맛보고 아무 말하지 못하겠는 그런 기분 있잖은가. 음... 하고 있다가 요리해 준 친구가 '맛있어?'라고 물으면 차마 맛있다고는 못하겠고 '아 어 먹을 만 해'라고 대답하게 되는 그런 기분. 이게 <범죄도시 2>를 보고 나온 내 기분이었다.
<범죄도시 2>는 현재 흥행이 아주 잘되고 있다.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코로나가 끝나고 그간 극장을 가지 못했던 많은 시민들이 입소문을 듣고 극장에 찾고, 또 만족하는 것 같다. 평이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그리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마석도의 주먹은 대중영화로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위에 영화 별로라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길게 썼지만, 영화라는 게 꼭 잘 만들어야 흥행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못 만들었다고 꼭 망하는 법도 아니기 때문에 그건 또 별개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하여간 3,4편이 동시 제작에 들어가고 8편까지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2편에서 모자랐던 부분을 잘 채워서 3편부터는 좀 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면 참 좋을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동석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가 뛰어노는 모습이 즐거운 건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