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를 낳고 14일째 되던 날.
산부인과 병실과 조리원을 거쳐 우리 부부의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실전 육아는 시작되었다.
조리원 퇴소 후 들어선 집에는 시부모님이 먼저 와 계셨고, 두 분은 집에 훈기가 돌도록 보일러를 켜 놓으시고 아기를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셨다.
시부모님은 첫날 저녁 아기가 잠들 때까지 우리 곁을 지켜 주셨다. 그리고 능숙하게 아기를 안아 ‘둥개 둥개~’ 하시더니 단숨에 재워 주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산후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현실 육아와 살림이 눈앞에 놓여 있었지만 할 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았고, 조리원에서 퇴소 교육 때 배운 아기 목욕하는 법 조차 당장 기억나지 않았다. 마른오징어 다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아기의 배꼽은 대체 어찌해야 할지, 기저귀에서 소변은 왜 자꾸 새는 건지, 응가는 왜 이렇게 많이 하는 건지 모르는 것도 많고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아기는 바라볼수록 예쁘고 신비했지만, 그 예쁜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책임감을 생각하면 아파트 뒷산이 무너져 내려 우리 집을 덮칠 것 같을 정도의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첫 4주는 산후 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아기를 키우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럼에도 꼬리를 무는 집안일과 신생아를 키우는데 필요한 일들은 끝없이 펼쳐졌다. 밤에는 우는 아이 젖 물리느라 잠을 설쳤고 낮에는 침대에만 눕히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안아주느라 집안일이 쌓여 갔다. 육아와 가사가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로만 여겨졌다. 저녁에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를 도왔지만, 낮시간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던 중 같은 아파트에 사시던 시부모님께서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출퇴근을 하기 시작하셨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아침이면 시아버님이 오셔서 나와 아기를 안방으로 대피시키고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 지내는 거실을 청소해 주셨다. 거실 청소가 끝나면 안방까지 싹 정리를 해 주시고 외출을 하셨다. 낮 시간이나 오후에는 시어머님이 다녀가셨다. 아기도 안아 주시고 이런저런 말동무가 되어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저녁이 되면 두 분이 함께 오시거나 아버님 혼자 오셔서 아기를 안아 주시고 재우는 일까지 해 주시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시부모님의 방문이 익숙하지 않아 과일을 꺼내야 할까, 커피를 내려드려야 할까 고민도 하고 아기를 돌보는 와중에도 ‘대접’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보니 두 분은 정말로 나를 돕고 싶은 마음에 우리 집으로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엄마 노릇을 하는 며느리가 안쓰럽고 애가 타서 자꾸만 우리 집으로 몸과 마음이 향하신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혹여나 며느리가 산후 우울증이라도 앓게 될까 봐 어머님은 낮시간이나 해 질 녘에 우리 집으로 건너오셔서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나누어 주셨다. 배꼽 잡는 남편과 도련님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머님의 최근 일상 이야기까지, 시어머님과 마주 앉으면 절친보다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아기도 자니까 며늘 잠깐 눈 붙여.” 하시고는 조용히 젖병을 삶아 놓으시거나, 가제수건을 차곡차곡 접어 놓으시고 집을 나서셨다.
그리고 아버님.
저녁 무렵 집으로 오셔서 우리 부부가 단둘이 앉아 저녁 식사를 하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는 아이를 돌봐 주시곤 했다. 농담을 즐겨하시는 아버님 덕분에 집안 분위기도 유쾌했고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나는 저녁시간이 만들어졌다. 그러곤 아버님은 저녁 9시 무렵 아이를 안아 토닥이며 재워 주시고는 살금살금 집을 나서셨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던 신생아를 키우던 그때, 시부모님 두 분의 방문은 내겐 큰 선물로 남았다. 두 분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고, 아이를 몇 개월 간 같이 키워냈다는 전우애마저 생겨버렸다. 사람이 가까워지고 정이 들기 위해서는 결국 얼굴을 자주 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가장 어렵고 힘들던 때에, 그리고 사람이 그립던 때에 두 분은 며느리에게 기꺼이 함께하는 ‘시간’을 내어 주셨다. 시간 덕분에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마음 덕분에 지금도 나에겐 시댁이 고향처럼 자주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사랑과 진심은 마음과 마음을 뛰어넘어 결국은 통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