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모두 끝나면 할 말이 굉장히 많을 줄 알았는데, 말 한마디 하는 것도 글 한 줄 적는 것도 어려웠다. 그저 잠에서 깼을 때의 몽롱함, 그 잠시 동안의 혼란스러움 같았다. 현실로 돌아온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작 몇 분 꾼 꿈에서도 확실히 깨어나기 위해서는 몇 초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249일 동안 나는 앞뒤로 총 22kg 안팎의 짐을 메고, 매일 다른 풍경을 보며 잠들고 눈을 떴고, 매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며 35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나만의 이야기가 늘어나는 동안 나는 즐거웠고 우울했고 설렜고 힘들었다. 때로 그것은 딱히 여행 때문만이 아닐 때도 있었다. 나에게 그 8개월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고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최소한의 짐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어디서든 적응하고 어떻게든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이슈들에 대해 새롭게 의견이 생겼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쓸데없는 편견들과 참견들은 사라졌다. 따뜻한 차에 우유를 타 마시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물이 있으면 귀찮아하지 않고 발이라도 담가보게 되었고, 야생에서의 캠핑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짧은 여행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누가 8개월의 시간을 보내듯 당연한 성장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집 없이 혼자서 내 모든 짐을 짊어지고 다닌 이 시간은 나에게 특별했고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택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되었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알게 되었던, 오로지 나만의 249일이 모두 지나갔다. 도착하고 떠나고 만나고 헤어지던 시간들의 연속. 나는 이 마침표 역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함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