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핀존 섬에서 정말 불타는(말 그대로 온몸이 불타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날은 느긋하게 산타크루즈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전에 가잔 먼저 향한 곳은 어시장이었다.
어시장에 가면 생선 조각들을 받아먹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펠리컨들과 바다사자들을 볼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크게 한 조각 받아먹는 바다사자의 모습을 보았다.
펠리컨들과 바다사자들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어시장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즉석에서 손질해주는 신선한 참치를 싼 값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치는 1파운드에 3달러라기에 2파운드를 구입하려고 하였으나 우리도 판매하는 사람도 잔돈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3.5파운드를 10달러에 구매하고 제대로 참치 파티를 해보기로 했다. 상술일지도 모르지만, 둘이서 참치로 한 끼를 해결하는데 10불이면 여전히 저렴하니까.
사 온 참치를 냉동실에 얼려놓고, 라스 그리에따스(Las Grietas)로 향했다. 산타크루즈 섬에는 주요 볼거리가 3가지 정도 있는데, 라스 그리에따스와 찰스 다윈 연구센터, 토르투가 해변이다. 이중 찰스 다윈 센터는 볼 게 없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위치상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라스 그리에따스와 찰스 다윈 센터에 가고, 토르투가 해변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토르투가 해변이 멋지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약 40분을 그늘도 없는 뙤약볕을 걸어 들어가야지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라스 그리에따스에 가기 위해서는 푸에르토 아요라 항구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독일 해변(Playa de las Alemanes)에 내려야 한다. 여기서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 해변은 물이 따뜻해서 신기했다.
가는 길에 독특하게 생긴 선인장 나무도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선인장이 크다고 감탄했지만, 우리는 이미 우유니 사막에서 훨씬 큰 선인장들을 보았기 때문에 크기면에서는 시큰둥했다.
물이 없을 것만 같은 뜨거운 풍경들을 지나니 라스 그리에따스에 도착했다. 수심이 너무 깊어서 잠수를 할 목적이거나 구명조끼를 들고 간 것이 아니면 수영하기 어렵다는데, 막상 가보니 물도 맑고 너무나 예뻐서 꼭 수영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후에 수영복을 입고 다시 와서 수영을 했다. 애초에 왜 수영복을 챙겨가지 않은 것인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심이 8m가 넘는다는데, 잠수해서 바닥을 짚고 올라오는 사람의 모습이 다 보일 정도로 물이 투명했다. 물이 깊고 차가웠지만, 양 옆의 돌들을 잡으면서 왔다 갔다 즐겁게 오후의 뜨거운 더위를 녹여냈다.
다음에는 찰스 다윈 센터로 향했는데, 볼 게 없다고는 해도 꾸준히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갈라파고스와 다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검색어 같은 사이니까.
사육하고 있는 거북이들이 많았는데, 사람 아기가 탈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거북이들도 있었다. 전날 물속을 휘젓고 다니던 거북이는 굉장히 빨라서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뭍 위의 거북이는 여전히 느렸다.
나는 어렸을 때 거북이 두 마리를 키운 적이 있어 거북이를 볼 때마다 애착이 간다. 한 마리가 죽고 난 뒤 며칠 뒤에 다른 거북이도 뒤따라 죽었을 때 어찌나 울었던지. 한동안 일기장에 거북이 얘기만 잔뜩 썼던 것이 생각난다.
점심식사로는 갈라파고스 맛집으로 자주 등장하는 갈라파고스 델리에서 샌드위치와 피자를 먹고 콜라를 함께 주문했는데, 약 20달러가 나왔다. 갈라파고스 물가 치고 비싼 편은 아니지만 오전에 참치 3.5파운드를 10달러에 구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깝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항구 근처에서 장을 보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참치 요리들을 모두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날 저녁 1차는 참치회부터 시작했다. 참치는 정말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았다. 한국에서 들고 온 소포장 간장이 유용했다. 고추냉이까지 있었다면 완벽했을 테지만, 간장만으로도 훌륭했다.
2차는 참치회덮밥. 한국에서 사 온 고추장과 이곳에서 산 식초, 숙소에서 얻은 설탕을 섞어 초장을 만들었다. 마트에서 사 온 신선한 채소와 참치를 넣고 비벼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다시 보아도 군침이 돈다.
3차는 참치 스테이크. 삼치구이 같기도 했다. 구우니 비교적 담백해졌으나 이미 1, 2차에 많이 먹은 참치회로 인해 속이 느끼해서 다 먹지는 못 했다. 4차로는 라면을 끓여 속을 풀어주었다. 한국에서 1만 2천 원이면 참치 회덮밥 정도 겨우 사 먹었을 텐데, 갈라파고스여서 가능한 푸짐한 참치 파티였다.
# 사소한 메모 #
* 언젠가 꼭 거북이를 다시 키워보고 싶다. * 참치의 맛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 Maroon 5 - Sug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