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그러니까

80만 원짜리 수업료

by 바다의별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UN의 '선물'이라는 노래를 기억하는지. 학창 시절 내내 들을 정도로 나는 그 노래를 사랑했지만, 마지막으로 들어본 건 아마도 2008년쯤일 것이다. 그 후부터는 불편한 마음에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서 지내던 어느 저녁,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때까지는 집 전화라는 게 대체로 있던 시절이었다. 경찰서였는지, 어떤 법무법인이었는지,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저작권 침해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소식이었다.


"UN의 '선물'이라는데. 80만 원 내야 한대."


내 기억으로 당시 엄마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해서, 무심하고 태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놀랄까 봐 일부러 최대한 침착하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엄마의 침착함 속에서도, 내 심장은 빠르게 쿵쾅거리면서 머릿속은 한 번에 수십 가지 생각들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저작권 침해? 내가 지금 법을 위반한 건가? 내가 뭘 했었지? 용돈 받아 생활하는 대학생에게 80만 원이라니, 이 돈은 어떡하지? 돈만 내면 전과는 안 생기는 건가? 나 나중에 취직도 못하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고등학생 때 수능 공부가 지겨워 우연히 블로그를 열었고,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담아 올리다, 좋아하는 노래라며 이 곡의 음원 파일을 자랑스럽게 올려두고는 이후 시간이 지나 잊어버린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당시에는 다들 그랬다' 정도의 말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뻔뻔하게 무단 배포를 한 셈이었다.


"엄마가 일단 낼 테니까, 나중에 돈 벌면 갚아."


당시에는 '장사'라고 불릴 정도의 합의금 요구도 종종 있었던 터라, 우리 집에서 받은 연락이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 사안이었던 건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나의 잘못은 그것과 관계없이 명백했다. 부모님께서는 나 대신 합의금을 내주셨고, 나는 죄송함과 죄책감에 고개 숙여야 했다.


그래도, 인생에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10년 후 그 사건을 저작권 관련 기관 입사 면접 때 지원 동기로 답하게 될 줄이야. 내가 저작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과거 나 자신의 위반 때문이었다고, 그건 내가 가진 기억들 중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 솔직한 대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운 좋게도 합격했다.


실제로 80만 원짜리 수업료는 내게 어마어마한 충격요법이 되어, 저작권에 대해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서 가수나 연주자들이 가지는 저작인접권에서도 알게 되었고, 공정 이용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 더 분명하게 이해했고, 어떤 부분을 더 조심해야 할지 수시로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음원 파일을 무단 배포했던 이유는 저작권 개념에 무지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그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탓이었다. 주변 친구들과 음악이나 드라마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불법 사이트 정보를 찾고 공유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그게 당연하고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도 다 그러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작권 보호 기관에서 짧게나마 직접 일을 해보면서 얻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은, '남들이 다 그러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작물들과 저작권자들을 보호하며 저작권 침해를 예방하고 적발하려 애쓰는 여러 기관들과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나의 안일함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그들 중에는 저작권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사람도 있고 직장을 찾다 보니 어쩌다 흘러오게 된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어떤 삶을 살든 떳떳하게 저작권 위반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저작권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으니까.


관련 종사자가 아님에도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이들도 있고, 실수로라도 저작권 침해를 저지르게 될까 봐 걱정하고 고민하다 관련 기관에 문의를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는 위반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지켜내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들 다 그래'라는 사고는,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막연한 '남들'이 아닌, 내가 알고 있는 '남들'을 기억하려 한다. 자신의 것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의 것도 사랑하는 그들을, 타인의 보이지 않는 정성과 노력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그들을.


그러면 '나 하나쯤'보다는 '나 하나라도'를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작은 파장을 만들어낼 수는 있으니까. 그리고 하나의 파장은 더 많은 파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합의금을 요구받았던 그 일이, 내가 저작권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고, 이후 관련 기관에도 잠시 몸담게 되는 동기가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만들어낸 파장은 내게 닿고, 내가 만들어낸 파장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으리라.


덕분에 오늘도 안심하며 글을 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플랫폼에, 내가 만들어낸 소중한 글들과 사진들을 마음껏 공유한다. 저작권을 당연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남들 다 지키니까'.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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