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일상, 뻔한 문장]최강록의 척

흑백요리사 시즌2

by 뻔한일상뻔한문장

흑백요리사 2가 인기였다. 최강록 요리사가 우승자다. 그가 요리한 결승 음식은 '사유'를 담고 있었다. 어렵지 않다. '척'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꿈꾸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어느 고지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 내 본질에서 벗어나 나를 포장해야 하는 시기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과 나를 맞추는 단계도 필요한 탓이다. 보통 '정공법'과 정직한 '꼼수'를 교묘하게 섞는다. 이때 내 본질이 탁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견뎌야 한다. 스스로 흐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괴롭기도 하다.

최강록 셰프는 '척'하지 않는 결승음식을 선보였다. '조림'을 잘하지 않지만 유명세를 타게 해 준 '조림핑' 별명에 상승세를 타기 위해 '조림'을 더 공부하고 잘하는 '척'했다고 결승 요리를 설명하며 그가 고백했다. 담백한 시인은 그의 음식에서도 보였다. 조림이 아닌 국물 요리를 했다. 좋아하는 재료와 음식 성상을 활용한 요리였다. 그를 돋보이게, 유명하게 만든 '조림' 요리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척'하며 살아간다. 원래 잘했던 말과 행동, 생각인지 어느 순간 나 자신도 헷갈린다. '척'이 내 본체가 맞는지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의 결승요리는 '자신'과 '심사위원', 더 나아가 짐을 붙들어 매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위로해 줬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많은 사람을 그 요리로 상기해 준 것이다. 나를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요리였다.

결승전에서는 누구보다 나를 꾸미고 싶었을 것이다. 근사한 식재료와 형태로 나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게알을 호박잎에 싸는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나를 위한 요리' 주제에 맞게 그는 그를 치장하지 않았다. 상당한 용기다. 요리괴물이 만든 본인을 힘내게 해 준 요리는 맛은 대단하지만, 울림은 일차원적이었다. 최강록만큼의 자신에 대한 고찰과 깊은 고백이 있지 못했다.

근데 최강록의 요리가 울림이 컸던 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척' 고백이 있는 것 같다. 나를 10년 동안 따라다니는 한 칼럼이 있다. 그건 20대 초반의 한 대학생이 쓴 글이다. 그 나이대가 가지는 패기와 불안함, 허세를 나열하면서도 살아있음을 고백한 그 글은 참 멋있었다. 20대 초반에 밝히기 부끄러운 부족함과 궤적을 드러냈다. 최강록 셰프의 요리와 설명을 보고 들으니 그 칼럼이 왜 지금까지도 좋은지 알 것 같다.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척'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회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고백은 '열정'을 말하는 것 아닐까. 최강록이 나를 위한 요리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내놓은 것처럼 말이다. 고작 30을 앞둔 나도 '나 잘해요'가 아니라 '나 이거 좋아해요'가 참 어려워진다. 연봉을 올리고 인정받기 위해 뻔뻔스럽게 '나 잘해요'를 표현하는 법은 늘어가지만 말이다.

좀처럼 초등학생 때는 쉽게 말했던 '좋아한다'는 그 말이 10대를 지나 20대가 되면 철없는 '사치'나 허황된 '꿈' 등 유치하고, 어리게만 들리는 순간들이 있다. 사회인인 나를 위로하는 건 잘한다는 척에서 벗어나 ‘좋아해요’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뻔한 일상, 뻔한 문장] 두드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