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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일상, 뻔한 문장] 두드러기

by 뻔한일상뻔한문장

“빈대나 옴 같아”. 기숙사에 들어온지 4개월째. 이불과 옷가지를 세탁기 두 개에 위잉~ 돌렸다. 아주 뜨겁게 고온 건조도 했다. 안도하며 방에 들어와 이불을 다시 피고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몸은 간지러웠다. 처음으로 몸에 빨간점이나 볼록한 것들이 막 올라왔다. 진드기 퇴치제도 뿌려봤지만 피부는 더 붉어졌다.

5일째 지속되던 날 즈음 가정의학과를 갔다. “이거 옴인가요? 빈대인가요?” 의사아저씨가 들여다보고 꾸욱 눌러보더니 절레 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건 벌레 흔적이 아니고 스트레스성으로 피부가 반응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재차 “대학원에 들어온지 4개월째라 스트레스 때문인거겠죠?”라고 하니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스트레스입니다.”라고 답해주셨다.

나도 늙어간다. 20대 초반에 잠을 줄이고 바닥에서 굴러도 이가 시리거나 피부가 간지럽지 않았다. 이제 몸에서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 정말 신기하게도 푹 자고 일어나면 내 몸은 건강해진다. 돌도 씹어먹는 나이대라는 20대에도 이런데 30대는 어떤 인생일까요?라는 생각도 든다.

마음에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이제 몸 밖으로 표출된다. 이건 몸이 보내는 적신호다. 처음 공부하는 것들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역시 녹록치 않다. 나를 인정하던 것들을 모두 탈피하고 새로운 도구들로 나를 드러내는 이 환경에서 내 자존심이 좀처럼 버려지지 않았다.

“처음하는건데, 뭐어때”라며 나를 다독여봤다. 계속 “마지막 전시만 하면돼. 이제는 기세야”라고 외치는 것도 결국 우직하고 꾀를 부리지 않는 내 성격탓에 나온 말들인거다. 좀처럼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납득될 때까지 해야한다는 성향이 나를 더욱 괴롭혔고 그 궤도가 두드러기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내 기질이 좋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고유한 나만의 것을 만들어왔다. 기사가 그랬다. 나는 좀처럼 고집이 없지만 내가 생각한 당위성에는 고집이 강하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새 분야에서 작은 실패가 누적되고 생각이 확장되지 않는 이 상황은 결국 나를 울게 만들었다. 멈췄다. 교수님께 부탁해 하루를 쉬었다. 내 감정이 격양되고 이 상황을 그대로 직시하기엔 내가 너무 소진된 탓이었다.

데칼코마니 같은 기자 선배에게 전화했다. 선배는 “너가 우직해서 그래. 우리 성격이 그렇잖아. 지금 이 시기만 넘기면 또 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잘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었다.

실패가 누적되니 성실하지 못해서 그런가?라며 내 최대 장점인 성실을 의심했고 내 최선의 한계점이 싫어졌다. 선배가 전화로 건넨 말 한마디에 마음이 개운해졌다. 결국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이 기댈만한 곳에서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 다시 땅을 집고 일어설 수 있는 거라고 이런 뻔한 문장으로 뻔한 일상 속에 있던 내 이야기를 끝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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