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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일상, 뻔한 문장] 포기가 빨랐지

by 뻔한일상뻔한문장

“우리 헤어지자”. 나는 그날도 이별을 고했다. 먼저 건넨 그 말에 내 속이 ‘뻥’ 뚫렸다. 자유부인이 된 나는 그 순간이 달콤했고 나비같은 날개짓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은 뒤 나의 언행은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너랑은 헤어지는 게 맞았어’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확신은 처량했다. 안타깝게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전화로 울고불며 매달렸다. 울고나니 또 후련했다. 이건 외로움에서 빚어진 악몽이었다.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사랑으로 착각한 것이다. 해소는 했지만 그에게 잘못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내게 주어진 것이었고, 이 순간의 부끄러움을 감쪽같이 해치워줬다. 상대에게 이기적인 못할 짓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헤어짐의 아픔을 단축했다.

헤어짐과 효율성이 어울리는 단어일까? 그런데 헤어짐에 효율성이 붙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의심과 불만이 확신을 넘어설 때 이제는 단칼같다. 헤어짐도 지속되면 무뎌진다.

20살의 첫연애는 질겼다. 사귄 첫 날, 그가 운명같다. 그 행복이 내 구불구불한 인생 길에 도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 clishe처럼 한다는 손주, 손녀의 이름을 짓는 짓을 나도 했다. 동화책을 펼치는 순수한 5살로 돌려보내주는 착각에 젖는다. 황홀하다.

그의 찌질한 모습이 좋았고 그의 책임감없는 모습도 그냥 넘겼다. 좋았으니까! 28살인 지금 그를 만난다면 아마 길어야 한달?. 내가 못견디는 면들을 발견하고 헤어졌을 것이다. 아니면 결혼했을 수도 있다. 이제는 그 행동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조금 있고 나에게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보하는 능력도 생겼다. 확신이 의심과 불만을 넘어서는 사람이 흰머리 나기 전에는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인생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항상 달콤함을 줬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내 연애는 점점 짧아졌고 사람을 포기하는 것도 나름 쉬워졌다. 썸도 오래가지 못했다. 짧은 말투가, 어색한 행동이, 부끄러워하는 말투가 그를 드러냈고 별안간 추측을 하며 헤어짐을 고했다.

포기는 나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헤어질 때마다 그의 어떤 지점이 이런 장점을 넘기지 못한다고 봤다. 그리고 그런 단점을 극부하는 선호가 분명해진다. 사람 골라서 만나는게 아니라는데 난 그럼 평생 못만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포기가 빨랐다, 엄마는 과거 얘기를 할 때 항상 그 일화를 꺼낸다. “응... 알게쪄...”. 엄마가 안된다고 하면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누울자리가 안되면 바로 포기하는 나였다.

어릴 때는 포기하는 것들이 비교적 단순했다. 딸기맛 아이스크림, 예쁜 인형과 옷. 하지만 성인이 되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가 쉽게 매겨지지 않았다. 포기에 따른 불확실함과 불성실함, 나약함, 무끈기 등의 비난을 견뎌야 했다. 뒤따르는 일들도 내 몫이었다. 포기는 용기였고 나를 성장하게 했으며 내가 우선시하는 가치와 선호하는 일들이 모습을 점차 드러냈다.

포기는 나를 드러냈다. 포기했다고 끈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포기 한 건 아마 끈기를 가지지 못한 환경,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이 끈기가 없다고 지적하고 마는 것이다. 그럴 떄 내가 너보다 포기를 많이 해봤어라며 자랑해도 좋다.

계속 포기하고 계속 시도할수록 나라는 사람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인생은 현명한 포기가 연속돼야 한다. 포기는 시도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라는 뻔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끝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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