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그러니까! 오늘 어땠나요?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소울>이 던진 질문이다. 영화의 기획의도다. 고작 일곱 글자다. 듣자마자 머리가 아릿해 온다. 통찰과 잡념이 머리를 가득 채워 지금을 마비시키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 질문에 인물 2명으로 답한다. 쳇 베이커와 '22'이다.
쳇 베이커는 재즈 연주자다. 부드러운 선율과 약간 흔들리는 트럼펫 음정. 그의 연주는 사람을 설레게 한다. 쳇 베이커는 본 투비 트럼페터다. 그런데 연주를 듣고 있자면, 마음 한켠이 설레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우울이 차오른다.
그 까닭은 삶에서 찾을 수 있다. 생애 처음 믿음과 사랑을 나눴던 그녀가 아닌 음악을 택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쳇 베이커는 무대의 삶만이 중요했다. 매일을 사는 것이 숙제이고, 무대에 서는 하루가 삶이었다.
‘22'는 영화 <소울>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인물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여하튼 사람이 되긴 한다. 22의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내 불꽃은 걷기이거나 하늘 보기일지 몰라". 그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을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이 둘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오늘을 사는 것이다. 쳇 베이커는 연신 찾아오는 고통을 참고 트럼펫을 불며, 22는 하늘을 보고 걸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며 말이다. 좋아하는 것 그러니까, 본인을 능동적이게 해주는 것을 하면서 삶을 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묵직한 질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는 삶의 목표, 관계, 꿈, 습관, 일상 등 모든 영역을 어떻게 대할지를 물어보는 포괄적인 질문이다. 따라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삶의 목표로만 답하는 것은 단순하다.
“목적, 삶의 의미... 단순하긴". 영화 속 대사도 있다. 삶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아니라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다양한 삶의 영역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사회 속 관계에서, 어느 날은 나와의 하루에서, 어느 날은 소중한 목표를 이룬 하루에서 내 삶은 점차 구성되어 간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또 몇십 년이 되었을 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들을 때 깨달았다. 이 질문은 미래보다 ‘현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미래가 불안하거나 과거가 충만하지 않을 때 이 영화를 보려고 한다. 오늘을 살자는 결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