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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쓰다] 테라로사와 경주, 할머니와 고사리

테라로사와 경주는 할머니와 고사리 같다.

by 뻔한일상뻔한문장

주름살이 얼굴과 몸에 굳게 자리 잡아 힘을 주어 펴봐도 관성처럼 다시 구겨지는 피부를 가진 나의 할머니는 지리산 산자락에 살고 계신다. 지리산의 거친 산바람과 작살 하는 붉은 태양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거친 살결이 그의 삶의 궤도를 보여준다.


어느 날 친구가 카페에서 한참 얘기를 하던 가운데 고사리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가 꺾은 고사리가 너무 맛있어서 친구 어머니는 감탄했고, 친척에게 선물했다가 그 가족도 우리 할머니 고사리를 애타게 찾으신단다. 시장에서 사 먹는 고사리를 먹었더니 우리 할머니가 꺾은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고사리가 머릿속에 맴돌아서 전화기를 들으셨단다.


나에게 고사리는 당연히 할머니 손에서 난 것이었다. 질긴 고사리는 가끔 한정식 식당에 가면 먹는 것이었고 손이 잘 안 갔다. '엇, 중국산!'이라고 외칠 만큼 자칭 고사리믈리에(고사리+소믈리에)다. 할머니는 고사리를 어떻게 꺾으실까?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도중에 할머니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을이면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알맞게 익은 밤을 줍기 위해 굽이친 산을 올라타는 우리 할머니다. 산소 가는 길을 경치나 구경하고 고요함을 즐기며 올라가실까. 여느 풀색과 비슷한 초록색 고사리를 살피시느라 자연스레 굽은 허리는 더 땅을 향한다.


조그맣고 부드러웠던 할머니 살결은 그렇게 거친 나뭇가지에 긁혀 지금의 거친 손이 되었을 것이다. 퍽 아프실 텐데 마구 풀숲을 헤치신다. 풀색과 비슷한 고사리가 잘 보이겠는가 싶지만, 우리 할머니는 정말 잘 찾으신다. 산소에 다다를 때면 항상 한 움큼 쥐고 계신다.


말 그대로 우리 할머니와 고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세이, 류이치 시카모토와 피아노처럼 어쩌면 자타 아이코닉한 느낌이 되었다. 그리고 떼놓을 수 없는 조화다.


할머니와 고사리가 경주 테라로사와 왜 닮아있는가? 이제부터 공간 해석을 시작한다.


테라로사는 공간 구성이 늘 재밌다. 테라로사 포스텍점은 사용감이 많아 보이는 철 구조물이 주재료다. 그 소재는 책장과 벽, 작은 가구에도 적용된다. 카페를 들어설 때 페이고 녹스고 사용감이 가득한 거대한 원형 테이블이 놓여있다. 그 위에는 포항의 한 꽃집에서 주기적으로 야생의 재질과 패턴을 엿볼 수 있는 꽃을 화병에 꽂아둔다. 테라로사 포스텍점을 들어설 때 느껴지는 개방감과 모던함, 약간 곁들여진 오래된 물건이 주는 느낌이 기분을 압도한다.


실제로 테라로사 f1963점이나 포스텍점, 강릉점, 제주 중문 에코라운지 DT점 모두 오래된 공장 가구나 와이어 등 빈티지한 멋이 느껴지는 제품을 그대로 활용했다. 다만 모두 오픈 키친과 철골 구조물, 노출 콘크리트 등을 이용해 모던한 디자인의 느낌이 더 강하다.


경주는 다른 지역보다 어렵다. 유물이 끊임없이 발굴되는 곳이다. 실제로 테라로사 경주점을 짓기 위해 실시한 정밀발굴조사에서조차 다양한 유구, 토기, 기와 등 유물이 발견됐다. 즉, 경주는 역사와 오래됨이 대표 키워드다.


그래서 테라로사 경주점을 방문하기 전에 과연 리싸이클링+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지향하는 테라로사가 경주의 오래됨을 어떻게 디자인했을지 궁금했다.


3월에 정식 오픈될 경주 테라로사는 어떠할까? 지난 2월 10일 경주 테라로사점을 다녀왔다.

건물은 한옥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landscape, 풍경에서 답을 찾았다. 한옥 너머로 고분이 보인다. 카페 외곽을 따라 높은 벽을 두르지도 않았다. 외부와 카페 내부 사이에 경계가 없다. 설계자의 건축 의도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경주 역사를 설명해 주는 고분을 카페 풍경으로 고스란히 활용했다. 직관적이다. 마루에 앉으면 액자처럼 다양한 각도로 고분을 즐길 수 있다. 경계가 없고 수평적인 건축, 풍경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조경은 역시 한옥이 답이다.


또 외부 경관에 자재 개입을 최소화했다. 분수대, 동상 등 조형물이 없다. 다만 같은 재질의 회색석을 디딤돌과 플랜터로 활용해 통일감을 줬다. 또 높이를 최소화했다. 고분 경관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다. 설계 의도가 명확하다. (다만, 개관을 준비 중인 카페 한쪽에 다른 공간이 있는데, 어떻게 디자인될지는 미지수!)

화장실 앞에 놓인 가로, 세로, 높이 30cm 안밖의 자연석.

상당히 감명 깊은 것은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소중히 여겼다는 점이다. 추측하기에 원래 놓여 있던 돌과 나무를 최대한 그 자리에 두고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것 같다.

이제 내부 공간이다. 오픈 키친과 음료, 베이커리 구매가 가능한 독채를 지나 디딤돌 위를 걸으면 이 공간이 펼쳐진다. 모던한 오픈 키친 공간과 그 앞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빈티지한 책상, 그 앞으로 길쭉한 테이블과 양옆 3~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10여 개 이상 놓여져있다.


내부 공간의 인테리어 포인트는 오래된 가구다. 한옥의 클래식함과 오래된 가구의 비중이 모던함을 앞질렀다. 다른 지점보다 특이한 점이기도 하다. 오래된 쁘띠 가구가 곳곳에 더 많이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경주의 오래됨과 빈티지함이 물씬 느껴졌는데 의도한 것 같다. 화장실은 찍지 못했지만 칸별 옷걸이도 모두 빈티지였다.


마당에서도 봤듯이 회색석 등 자연석이 내부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모던한 대리석 테이블에 모양이 각기 다른 자연석을 받침대로 과감하게 사용했다. 디테일함에 감동이 느껴졌다. 경주의 오래됨과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게다가 이 디자인에서 외부 공간과의 연결감과 통일성도 느껴진다.

특히 공간 가운데 놓인 길쭉한 테이블과 좌석은 모두 목재다. 주목할 점은 나무의 끊김을 인위적으로 채우거나 연결하지 않고 살려뒀다. 외부 공간에 자연석과 나무를 위치 그대로 놓은 것처럼(추측), 나무도 자연스럽게 컷팅된 모양을 그대로 보존한 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할머니와 고사리는 아이코닉하다. 경주와 테라로사는 어떠할까? 필자는 테라로사 인테리어의 정점이 경주 테라로사라고 생각했다. 다른 지점의 노출 콘크리트나 강한 철제의 모던함도 물론 멋스럽다. 하지만 경주는 독보적이다. 경주 지역의 특색인 오래됨에서 느껴지는 멋스러움을 한옥의 클래식함과 빈티지함, 오래된 가구를 이용해 연출했다. 경주 지역을 해석한 과정이 훨씬 정성스럽고 다른 지역 지점보다 잘 드러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따라서, 경주의 아이코닉함이 테라로사 경주점에서 잘 드러났다. 이 공간을 강릉, 서울, 제주 등 다른 공간에 옮겨보자. 경주 고분 풍경이 없어진 이 테라로사는 아마 설계 의미를 잃을 것이다. 또한 내부 빈티지함과 자연스러운 가구 디자인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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