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됐으면 좋았을텐데
연말에 <<와일드하츠>>라는 게임을 열심히 했습니다.
흔히 ‘몬헌류’라고 불리우는 장르인데, 나오자마자 최적화가 너무 엉망이라 리뷰점수 같은게 모두 박살나버렸어요. 초장에 이렇게 점수가 박살나면 더 사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그래서 아쉽게 스러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근데 최적화같은건 사실 개발사가 성의만 있으면 언제든 패치 내놓고 괜찮아 질 여지가 있으니까 … 기대작의 출시 초기 평가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최적화 같은 이유에서라면, 출시되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 다시 시도해보곤 하죠.
그렇게 해 본 와일드하츠는 생각보다 괜찮은 게임이더라고요?
지금까지도 박살난 채로 유지되고 있는 점수가 너무 안타까울 정도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몬헌과 다르면서도 또 만족스럽다고 느끼는데, 크게 두 가지만 꼽아보겠습니다.
우선 이 게임이 몬헌과 어떻게든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내세운 ‘카라쿠리’라는 것이 생각보다 사용이 편리하고 게임 진행에 영향이 많으며 그러면서도 사용하는게 재밌더라는게 너무 좋습니다.
본래 몬헌은 오로지 무기 한자루만을 들고 몬스터와 겨루기보다는 사전에 준비를 많이해서 여러가지 혜택을 보며 빠르고 편리하게 잡는게 재밌는 게임이죠. 각종 함정이라거나 단차가 있는 지형으로 유인해서 단차가 있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기믹을 활용한다거나 기타등등.
근데 사실 그 준비가 번거롭고 귀찮은 경우가 참 많아요. 일일이 매번 하기에는 성가시단 말이죠.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해야하고 사용하기 위한 환경도 어느정도 살펴야하며, 일회성인 경우 한 번 쓰고나면 - 심지어 실패하더라도 - 다시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해야하고 … 매우 귀찮습니다.
와일드하츠의 카라쿠리는 그런 모든 번거롭고 복잡한 ‘헌팅을 위한 준비’를 하나의 자원을 통하도록 통일해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걸 이용해서 단차를 만들거나, 공중에 뜬 몬스터(와일드 하츠에서는 케모노)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작살을 설치하거나, 강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벽을 설치하거나,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요.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기도, 순간적인 상황에 맞춰 필요한 카라쿠리를 설치하는 것도 매우 단순하고 편리합니다.
전 원래 몬헌에서 그놈의 준비가 너무 귀찮아서 어지간하면 무기만 들고 싸우려는 편입니다. 초중반까지는 그렇게 준비 없이 해도 별 문제가 없어요. 중후반 들어서면서 서서히 한 마리 잡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극후반 들어가면 준비없이 덤비는게 버거울 정도로 힘들긴한데 그래도 ‘준비의 귀찮음’이 싫어서 멀티로 가서 남들에게 빌붙어 잡거나 하는 … ㅋ
근데 와일드하츠에서는 카라쿠리를 굉장히 능동적이고 빈번하게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사용하는 과정이 꽤나 재미있어요. 깔아둔 함정으로 케모노를 유인하는 것도,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하여 최대의 효과를 보는 것도, 모두 ‘나 쫌 치는 듯?’ 하는 느낌을 가슴에 팍팍 꽂아줍니다. 게임하면서 이거만큼 만족스러운게 많지 않죠.
두번째로 만족스러웠던 점은 후한 판정입니다. 몬헌은 요 부분이 꽤 빡빡한 편이에요. 한참 몬스터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큰 공격을 감지하고 피해야한다는건 알겠는데 ‘좀 늦었나?’싶으면 여지없이 늦은게 맞습니다. 너무 빨랐나? 싶으면 가차없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손해를 봐야하고요.
와일드하츠는 이런 면에서 매우 관대합니다. 와일드하츠의 판정이 후하다는건 여러가지 측면에서 손쉽게 살펴볼 수 있죠.
우선은 회피 무적 판정의 관대함. 회피시 무적 판정이 있는데 이 판정이 꽤 길어요. 그래서 어지간한 공격은 확실하게 잘못한게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회피로 피해집니다. 심지어 회피 무적 시간도 길어서 적당히 ‘이쯤인가?’하면서 피하면 다 피해집니다. 그리고 이 관대한 회피 판정은 다시 위에서 말한 ‘나 쫌 치는 듯?’을 강화해주죠.
다음은 손쉬운 캔슬.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지금 어떤 동작 중이었는지에 관계없이 아무떄나 사용가능한 캔슬 동작이 있습니다. 내가 이미 연속기 커맨드를 넣었는데 케모노가 갑자기 궁극기 패턴이 들어갔고, 이 패턴의 발동 시점이 내 동작의 완료 시점보다 빠르다? 그냥 쉽고 편리하게 지금 동작 캔슬해버리고 회피 준비하면 됩니다. 그 이후로는 방금 위에서 말한 ‘관대한 회피 무적 판정’에게 맡기면 됩니다.
마지막은 쉬운 카운터. 와일드하츠에서도 몬헌의 태도처럼 특정한 무기가 카운터에 특화되어 있는데요. ‘우산’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우산인데 그걸 무기화했고, 이게 또 나름의 운치가 있는데다가 카운터 플레이가 재밌어서 제가 좋아하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이 무기의 카운터 판정이 꽤 관대한 편이에요. 근데 이건 회피무적 처럼 판정 시간이 길어서 좋다기보다는, ‘캔슬 + 즉시발동’이라서 좋습니다.
몬헌의 태도로 카운터를 치는건 일견 쉬워보이지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왜냐면 카운터 커맨드를 넣고나서 실제 카운터 효과가 발동하기까지 예비동작에 시간이 살짝 걸리기 때문이죠. 여기서 ‘예비동작’에 시간이 소요된다는건 상대의 패턴을 어느정도 알아야하면서 동시에 나의 예비동작에 소요되는 시간이 어느정도인지도 알아야한다는거거든요. 그래서 보기보다는 까다롭습니다. 물론 막상 익숙해지고나면 그렇게 크게 어려운건 아니지만요.
와일드하츠 우산의 카운터는 즉시발동입니다. 심지어 캔슬까지 포함된. 즉 앞에서 내가 무슨 동작을 하고 있었건 카운터 커맨드를 넣으면 시차없이 바로 카운터 효과가 발동됩니다. 이게 카운터 넣는걸 말도 안되게 손쉽고 편하게 만들어줘요. 게다가 심지어 그 카운터 발동 시간을 늘려주는 패시브 장치들까지 존재합니다. 최대 2배까지 늘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엄청 사기적이죠. 대신 카운터를 못하면 무기가 아니라 뭔 이쑤시개같은게 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만, 카운터 하는게 쉬운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회피 무적 판정의 관대함에 손쉬운 캔슬, 그리고 쉬운 카운터가 합쳐져서, 와일드하츠는 매우 리드미컬하고 쾌적한 액션을 구성합니다. 몬스터의 패턴 자체만 보면 와일드하츠의 케모노 패턴이 몬스터헌터의 몬스터들보다 좀더 빡빡해보여요. 빈틈이 없이 계속해서 덤벼오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초반의 명백히 튜토리얼 격인 케모노를 지나고나면 ‘무슨 패턴이 이렇게 쉴 틈 없이 몰아치냐’ 싶을 정도거든요.
근데 그건 겉보기만 그런거고, 회피 무적으로 스리슬쩍 패턴 흘려버리다가 기회가 왔다 싶으면 냅다 큰 공격을 갈겨버려도 됩니다. 그러다 역공 당할까 걱정된다면 손쉬운 캔슬로 잽싸게 캔슬해버리고 다시 회피하면 되죠. 우산이 주는 카운터 플레이의 경쾌함은 덤입니다. 결국 겉보기로는 몬헌보다 어려워보일지언정 알고보면 몬헌보다 좀더 쉬운 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최후반 DLC몹인 무라쿠모, 나라쿠자루 등은 격이 좀 다르지만 …)
결국 와일드하츠의 액션은, 하다보면 ‘그렇게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패턴을 모두 내가 받아내고 있어!’가 되면서 앞서서도 말했던 ‘나 쫌 치는 듯?’을 강화시켜줍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건 당신에게 스스로 빛나는 자신을 느끼도록 해주기 위한 것!
와일드하츠가 이렇게 좋은 게임입니다 여러분. 아쉽게도 나락 가버린 리뷰점수와 변변치 않은 판매고 때문에 후속작에 대한 기대는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이 좋은 게임이 있었다는걸 누군가는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서 … 여기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