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배려는 없음, 불편하지만 행복한 것...어떻게 가르칠까?
아들들을 키우면서 가장 난감할 때가 ‘배려’를 가르쳐야 할 때이다. 편견인 것 같긴 한데...남자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당연하지 않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측면이 여자들보다 더 강하다.
내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타인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것. 그게 배려인데...여기에서 니가 좀 더 편한 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내가 왜 불편을 감수해야 하냐는 식이 남자들의 사고방식인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왜 나를 불편하게 하는가? 당신이 불편해도 날 사랑하기 때문이라면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식이랄까. 글쎄 그 불편해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사랑을 넌 왜 안 하시냐구요, 라고 따져 물으면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억울한 건지 나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왜 나 1인이 3인을 보살피는 일에 매여서 원하거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을 피곤하게 해내야 하는지...이 불편 부당함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는지...
이걸 여섯 살, 아홉 살 꼬마들에게 이해시키자니 참 난감하다.
가능한 미션일까? 어떻게?
아들들에게 ‘배려’를 가르치겠다면서 화를 내거나 억압 및 강요해서는 되질 않는다. 그건 나도 안다. 그게 어떤 덕목이든 자연스럽게 터득해야 비로소 제 것으로 익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 정도는...그런데 글쎄 그게 어떻게 가능한?
오전 내내 아이들 뒤치닥 거리 하느라 시간에 쫓기고 그 이후 시간은 밀린 업무 처리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데 오후 5시 이후 시간은 아이들 하교와 저녁밥 차리기, 밀린 청소, 빨래와 설거지에 족히 3시간은 엉덩이 한번 못 붙인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엄마에게 관심 좀 부탁한다고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까?
저녁 8시 이후에는 나도 뉴스를 제대로 보고 싶으니 제발 너희들끼리 놀고 너희들도 밀린 숙제와 내일 등원이나 등교를 챙기면 안되겠냐는 이야기를 몇 년째 반복하고 있을 뿐, 그게 기본적인 엄마에 대한 배려라는 걸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은. 그저 이때쯤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될 거라는 감각만 발달시켜줬다. 젠장.
그래서 오늘도 나는 화를 내며 아이들을 재워놓고 잠들기 전 한번 꼭 안아주지 못한 게 못내 섭섭하고 자책감이 든다.
나는 화가 났다. 묻기만 하고 듣지는 않는 아이들에게...
보기만 하고 느끼지는 못하는 아이들에게 서운했다.
이게 아들이라 더 그런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 대답은 미궁에 빠졌다.
딸은 좀 다를 것 같다는 게 내 편견이다.
나만 돌이켜 봐도 나는 딸로 성장하며 엄마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했고 사춘기 이후에는 아빠를 배척하다시피 미워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즐겁해 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아니라고 해도 결국 아빠를 그리고 엄마를, 언니와 오빠를, 친구를, 연인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시간을 따진다면 내 마흔 넘은 인생의 절반은 충분히 차지할 것이다. 딸은 그렇게 성장한다. 다 그렇진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아들에게 배려를 가르칠 수 있는 구체적인 팁을 공유해달라고. 남자가 여자를 배려한다고 세상이 흉악해질 것 같지는 않으니...우리가 살아갈 미래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아들에게 ‘배려’를 꼭 훈련시키고 싶다. 훈련이라는 말 싫은데 도대체 이해를 못하는 남자들은 몸이 기억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제일 빠르지 않을까? 습관처럼 여자들을 배려하다 그 습관들이 본인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비로소 좋은 덕목으로 ‘배려’를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