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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Sep 05. 2017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혼자 제주 여행

3. 낮은 담이 나에게 보여준 세상을 발견하다

제주도의 특징 중 하나는 낮은 담인 것 같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집 안이 훤히 보이는 낮은 담들 때문에 돌아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네모 반듯한 높은 건물들에 익숙해져 버린, 촌스러운 도시 사람에게 이런 풍경은 아직 낯설다. 


/처음엔 참 어색했던 낮은 담들. 온평리


낮은 담은,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도의 특징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강한 바다 바람이 부는 특성 때문에 높은 담을 쌓을 수가 없었던 거다. 높은 돌담을 쌓았다가 무너지면 골치아팠을 테니까. 그리고 집 밖을 낮은 담으로 둘러놔도 도둑이 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도둑이 섬 밖으로 도망가기란 쉽지 않았을 거고. 


가림막이 되지도 못하는데 담을 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 그래도 여기까지가 내 집이야’ 하는 경계가 필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런 경계의 역할이지 않았을까. 


내 마음의 담은 어느 정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내 담의 높이는 어느 정도일까. 안이 훤히 보이는 담일까, 까치발을 들고 보아도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담일까. 


아니다. 애초에 나에게 담이란 있긴 한 걸까?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내가 나를 보기 위해서도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는 걸. 나의 담은 생각보다 높았다. 


나의 담은 왜 이렇게 높아져 버린 걸까. 내 담은 경계를 긋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타인을 경계하기 위한 담이 된 것 같다. ‘안 보이게 할 거니까. 보지 마.’라고. 


누굴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절로 내 담이 높아진 건 아니다. 냉정함을 넘어선 날카로운 사회의 시선, 잣대들이 내가 담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를 보호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보일수록 나도 그들의 그 시선이 보였다.


나 또한 보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를 보는 것들이. 내 담은 나를 보호할 유일한 장치였다. 그들에게서 나를 감추고, 나도 그들을 보지 않도록. 


그렇지만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제주도의 담이 낮은 이유 말이다. 


높은 담이 강한 바람에 무너지게 되면, 그 피해가 엄청나다는 걸. 그 높은 담이 집을 덮칠 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이 다칠 수도 있고 결국 집 안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걸.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담을 쌓는데만 열중했는데 그게 무너질 때의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 고담을 쌓는 것 외의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방법만이 있다고 생각했다. 


낮은 담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의 높은 담을 지금 다 부숴버리고 새로 낮은 담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나에게 그런 용기는 아직 없다. 특히 주변의 보이는 담들이 내 담만큼이나 높은 높은 그런 상황이라면 말이다.


담의 돌멩이를 몇 개 빼는 것부터 시작할 순 있을 것 같다. 주변에 누가 지나가는지 누군가 있는지 없는지도 안 보이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머리통 정도는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아 누군가 있구나.’하는 정도는 알 수 있도록. 그리고 손을 흔드는 거다. ‘여기 누가 있는데, 같이 손을 흔들 사람이 있냐’라는 신호의 의미로? 나와 같이, 뺀 돌멩이를 날라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뺀 돌멩이로 뭘 할 수 있을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실 이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거의 평생 담을 쌓는 것만 해왔으니까. 높게 높게 만드는 방법만 익혀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도를 해 보고 싶다. 무너져도 무너져도 다시 곧 이쁘게 쌓을 수 있는 낮은 담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도록. 


/낮은 담들은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해 준다. 해녀박물관 전망대에서.


그리고 난 낮은 담들로, 더 많은 것들이 자유롭게 보이는 세상을 봤다. 그 세상의 아름다움을 봤으니까. 그 아름다움을, 내가 어디에 있든지 보고 싶다. 


그러니까 나부터, 조금씩,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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