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 쉼터

by 은세유

언제부턴가 지나가는 아이들이 우리 엄마를 "할머니!"하고 불렀다. 어떤 아이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처음 들었을 때 혼낼 일도 아닌데 마음이 몹시 상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로부터 이미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누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불러도 나는 더 이상 속이 상하지도, 당황하지도, 어색하지도 않다.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하늘에서 햇살이 직선으로 내리쬐어 따끔따끔했던 어느 여름날, 엄마와 챙이 넓은 모자를 하나씩 집어 쓰고 산책에 나섰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보니 빨간 불이라 잠시 기다려야 했다. 그때, 커다란 녹색 파라솔 하나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사는 구에서는 버스 정류장이나 횡단보도처럼 사람들이 일정 시간을 대기할 수밖에 없는 장소에 구민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볕이 따가운 날에는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에 에어컨이 있는 건물을 발견한 듯 반가웠다.


나는 얼른 파라솔 안으로 쏙 들어가 섰는데 엄마는 섣불리 들어오질 못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엄마, 이거 좋지? 그늘막 쉼터! 들어와, 시원해!" 하니, 엄마가 갑자기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거 나 뭐라고 읽었는지 알어?"

".......?"

"늘그막 쉼터! 크크크크. 난 뭐 굳이 이렇게까지 써 놔야 하나 했지." 하며 깔깔깔깔 웃는다.

늙은이 된 것도 서러운데 그냥 '쉼터'라고 하면 되지 굳이 늙은이들 자리라고 정해 놓으니 민망해서 못 들어가겠더라고 했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글자의 위치만 바꿔도 금방 그늘막이 늘그막이 됐다. 문득 누군가가 내게 좋은 마음으로 내 준 그늘막을 나 혼자 늘그막이라고 읽고선 꽁해 있었던 적이 없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아니면 늘그막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 선의랍시고 경솔하게 그늘막을 내밀어 보인 적은 없는지도.


말이라는 건 참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같은 말이 전혀 다른 말이 된다. 그래서 말을 할 때도, 들을 때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신중함과 여유가 필요하다. 나만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이의 마음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바로 '배려' 아닐까. 배려는 보통 남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론 나를 위한 일이 될 때가 많다. 남의 말을 잘 들어 보려는 배려가 없다면 나를 주눅 들게 만드는 '늘그막'이 실은 내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막'이었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